(김선애의 사람사는 이야기) 초가집서 무일푼으로 시작했던 60년 전...모두 추억이 돼 어머니 황혼은 아름답다.
(김선애의 사람사는 이야기) 초가집서 무일푼으로 시작했던 60년 전...모두 추억이 돼 어머니 황혼은 아름답다.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6.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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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애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김선애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고향을 지키는 어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는 온 가족의 회억을 불러일으킨다.

 

"불이야!!!

옛날에 초가집 지붕은 볏 집으로 올려서 만들은 거지. 불길이 비닐 막을 타고 지붕으로 순식간에 올라가고 있었지. 마침 나는 그때 태진이랑 장에 나갔다가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 불 난 것을 본거여. 얼매나 놀랐는지 몰라. 다리가 힘이 풀리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지.

 

흥진이가 다급한 마음에 “불이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영진이가 방에서 뛰쳐나오고, 고맙게도 동네사람들도 달려와서 불을 꺼 주었지. 소방차가 도착 했을 때는 불을 끈 상태였어. 급한 불은 다 껐다고 생각해서 동네사람들은 모두 다 돌아갔지. 그 뒤가 더 무서운 일이지 뭐야. 불이 다 꺼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서까래 아래 볏 집이 두터우니께 처마에 불씨가 남아있었던 거야.

 

스믈스믈 불꽃이 올라오는 걸 본 큰 아들 영진이는 면장갑을 끼고 처마에 올라가서 서까래 사이사이에 일일이 손을 집어넣어서 하나하나 탁탁 눌러가며 잔불을 다 껐던 거야.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모르지. 영진이는 너무나 차분하게 불씨를 확인하고 장갑 낀 손으로 다 끈 거야. 장갑을 벗어보니 화상이 심해서 온통 손등이고 손바닥이고 물집이 많이 잡혔어. 할머니가 먹물로 화기를 다 빼주셨지만 그 일로 결국 왼쪽 손에 흉터는 남았지.

 

장남으로 대담하고 침착하게 화재를 대처해서 어떻든지 간에 집안을 살린 거지. 불 낸 흥진이도 얼매나 놀랐겠어. 흥진이는 밤새 울면서 가위눌리고 난리도 아니었지. 지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나갔다 밤늦게 돌아왔는데 영진이가 차분하게 마무리 지은것을 보고 흥진이도 별로 혼내지 않고 그냥 넘어갔어.

 

 

네 형제 중 둘째 흥진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기념으로 찍은 가족사진(앞줄 가운데), 45년이 흐른 지금 사진속 아이들은 환갑이 됐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큰 불이 났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촘촘하게 마지막 불씨까지 끄는 것을 보고 정말 내 아들 맞나 싶었지. 나중에 소방서에서 사람이 나와서 누가 불냈나 조사하러 왔었는데, 흥진이하고 정진이가 입을 맞췄나봐." 

 

흥진이는 중학교 2학년이고 정진이는 국민학생이니께 흥진이가 불냈다고 하면 벌금 물을까봐 정진이가 자기가 냈다고 한 거야. 애들이 그렇게 철이 꽉 들었어. 집안 어려운 것도 잘 알고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그때 큰 아들 없었다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지." <자녀들이 헌정한 어머니 자서전의 일부 발췌>

 

아산의 이영자 어머니는 우애 좋던 4형제의 자랑에 흐뭇해하시며 고단했던 그 시절 4형제가 있어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다고 말씀하셨다. 남편과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했던 60년 전으로 거슬러 가도 이젠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어머니의 황혼은 아름답고 따뜻하다.

 

평생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보상이라고 자녀들에게는 그리 살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 하신다. 어르신이 삶의 경험으로 들려주시는 인문학 강의에 삶의 진수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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