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현 칼럼] 전 세계 누비며 무역...국내1위 이발기업체 (주)보거스
[조병현 칼럼] 전 세계 누비며 무역...국내1위 이발기업체 (주)보거스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6.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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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여러 가지 일 소화해야 하는 무역 사업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디테일 챙기는 습관 중요
조병현 (주)보거스 상무
조병현 (주)보거스 이사

 

이발기는 원래 프랑스 바리캉(bariquant)마르라는 회사 제품이었고, 영어로는 클리퍼다.

88올림픽 이후 일본을 통해 이발기기가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일본식 발음 때문에 바리캉으로 알려지게  됐다.

50대 이후 남자들은 주로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사용한 제품은 일명 손바리깡이다. 머리카락이 씹히거나 뜯겼던 바리캉에 얽힌 안좋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이발기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하는 제조사다.  전기이발기와 면도기를 만들어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30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조그만 중소기업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이발기 제조 1위 업체이다. 

국내시장만 보고 제품을 만들 수는 없고, 실제 외국에서 자기브랜드로 판매하는 고객들 상대 OEM 판매와, 일본경쟁사 제품을 취급하는 전 세계 수입업자가 회사의 주 고객이다.신제품을 개발하면 박람회는 필수 코스다. 가장 편하게 바이어를 만나려면 해외 전문박람회에 나가는 게 효과적이다. 

이태리볼료냐, 미국라스베가스, 홍콩코스모프로프와 같은 세계 3대 미용박람회에 나가면 신제품에 대한 외국 바이어의 반응을 바로 알 수 있다. 제품상담시 주로 영어로 소통하지만 바이어 역시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중요한 핵심부품 몇 가지만 영어로 얘기하면 판매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다. 자세한 것들은 메일로 보내주면 된다.

박람회서 만난 바이어에게 샘플을 주는데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기존 거래처는 무료로 준다. 신규 제품 홍보나 충성도를 높여 신규 주문을 받기 위해서다.

둘째는 신규 고객은 무조건 샘플비를 받는다. 소개를 통해서 오는 경우도 무조건 샘플비를 받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료 샘플 헌터때문이다. 실제로 주문을 한 바이어를 보면  ‘샘플헌터‘는 거의 없다. 자기 비용을 주고 테스트를 해야 진실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샘플비를 받으면 주문 받을 가능성이 그 만큼 더 커진다고 보면 된다.

9년 전 터진 일이다. 상상도 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메일 해킹 무역사기를 당했다. 이태리볼료냐 미용박람회에서 만난 미국 바이어인데, 기존 거래는 없고 박람회 부스에서 처음 만났다. 샘플 구매후 일주일도 안 돼 주문을 받았다. 보통 판매 조건은 당사 브랜드 경우 30대70이고, OEM 제품은 50대50이다. 이 바이어와는 계약금 30%를 받으면 주로 30일 이내에 물건을 만들고 출고전 잔금 70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당시는 주로 메일로 소통하고, 시차 때문에 퇴근후 집에서 간단하게 확인 전화를 하곤 했다. 이 바이어한테는 잔금을 요청하기 위해 몇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메일로 계속 잔금을 요청했다. 그리고 나서 약속된 날짜보다 10일이 지난 후 '약속한 날짜에 잔금 70%를 입금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송금했다는 영수증을 보니, 우리 회사 영국은행 계좌로 보냈다는 영수증이었다. 누군가 나와 바이어 간 메일을 중간에 해킹해서 영국에 우리 회사 계좌를 만들어 "한국 본사는 회계감사중이니 영국은행 계좌로 보내라"는 메일을 보냈고, 미국 바이어는 그걸 믿고 당사 영국은행 계좌로 잔금을 보낸 것이다.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이어와 제3자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미국 바이어가 받았다는 메일을 확인해 보니, 내 메일 아이디 알파벳 10자중 1자를 다른 알파벳으로 고쳐 중간에 메일을 가로채 보낸 것같았다.

금융감독원, 방송국, 경찰서 등 모든 공공기관에 신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며 담당자들이 믿질 않았다. 금융감독원에 2차 3차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커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1억원 이상 금액만 해외 인터폴에 수사를 의뢰 할 수 있다며 거절했다.

해킹당한 바이어가 한국주재 미국대사관에 연락해 사실 여부 조사를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해킹을 당한 쪽은 당사가 아니라 바이어였지만, 회사에서는 잔금을 50대 50으로 분담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메일을 보낼 때 서명란에 반드시 ‘당사는 국내은행 계좌만 사용하고 해외은행 계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해외은행으로 입금한 것은 당사 책임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영어로 써서 보내고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무역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5년전부터 카톡,위쳇,홧스웹과 같은 스마트폰 메신저가 주요한 무역 소통 수단이  되었다. 

바이어를 만나면 명함 교환후, 스캔해서 스마트폰에 등록한다. 사진으로 실시간 확인하면서 교신할 수 있어서 불완전한 언어소통으로 인한 업무착오가 거의 없어졌다. 영어를 하는 것 보다 스마트폰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위와 같은 무역사기를 예방할 수 있고 의사소통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

스마트폰 메신저 덕분인지, 위의 조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해킹 및 사기를 당한 적이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그래도 그 후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걸 보면 사소한 경고 조치가 꽤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여러 가지 업무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중소기업 무역현장에서는 두드린 돌다리도 한번 더 두드려 보는 디테일을 챙기는 습관이 성공 조건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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