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아직 만나지 않은 세상...그들은 이동 약자
[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아직 만나지 않은 세상...그들은 이동 약자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7.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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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경사진 데크를 따라 올라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그는 휠체어어에 앉아 있었다. 척추가 부러진 영구 장애, 휠체어를 앞뒤로 돌리며 인사를 건네는 그, 나는 낯선 만남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시선을 낮추었다. 은테 안경에 담긴 눈빛은 살아 있었고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 말해주듯 지적인 신사였다. 

그날의 인터뷰이였던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휠체어를 돌려 냉장고에서 야쿠르트 한 병을 꺼내 방문을 환영했다. 그는 낯선 만남의 긴장감을 LP판으로 풀었다. 유행이 지난 팝송, 전자음에 밀렸지만 심금을 달래는 건 역시 LP판의 몫이다. 중도에 영구 장애를 가진 분과 대면하는 첫자리가 조심스러웠던지 나는 애꿏은 손만 비비고 있었다.

25년 전 39살, 그는 교통사고와 만났다. 명문대를 나와 은행장의 야망을 품고 돌진하던 그에게 교통사고는 가정과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아간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척추 손상으로 영원히 발을 땅에 디딜 수 없는 영구 장애가 되었다.

그의 사무실을 오르는 경사로, 가능하면 타인의 도움없이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데크 옆의 봉을 잡고 혼자서 휠체어를 이동한다. 걷은 최소한의 일상이 큰 감사로 다가온다.
그의 사무실을 오르는 경사로, 가능하면 타인의 도움없이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데크 옆의 봉을 잡고 혼자서 휠체어를 이동한다. 걷는 최소한의 일상이 큰 감사로 다가온다.

 

주위에서는 그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현실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에게 자해의 흔적을 들었다. 분노를 삭였던 처절한 싸움, 이야기 중간 중간 늪에 빠진 지친 한숨, 의연하려 애써 짓는 씁쓸한 미소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그림자들이었다.

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만을 안고 살아가지 않았다. 한때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휠체어를 타고도 대학원 과정으로 두 개의 전공을 마쳤다. 이동이 자유로운 우리 보다 학업의 성과를 더 냈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개척해 나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그를 본다.

물론 음주와 흡연도 이미 썩 훌륭한 벗이 된지 오래다. 지금의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며 생명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간간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삶에 성을 내는 건 그 여건에서 도리가 없는 일이다.

 

교통사고, 인생이 송두리째 함몰되는 시간을 만나본 사람의 의연함이 있다. 휠체어에 평생 의지해야 하지만 그 현실의 벽을 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도리가 없을 때, 분노가 끓을때는 바퀴를 돌려 마음을 다독인다.
교통사고, 인생이 송두리째 함몰되는 시간을 만나본 사람의 의연함이 있다. 휠체어에 평생 의지해야 하지만 그 현실의 벽을 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도리가 없을 때, 분노가 끓을때는 바퀴를 돌려 마음을 다독인다.

 

유년의 기억 저편에서 장애인을 애써 멀리하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꺼내왔다.

가게를 하던 우리 집에는 날마다 큰 스피커에서 구성지고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장날이면 어김없이 동네에서 바보라 불리는 아저씨가 우리 집 앞에 와서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에 장단 맞춰 춤을 추었다. 

시장에온 사람들은 덩달아 웃거나 놀려대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질도 서슴지 않았다. 정신지체를 가진 아저씨였는데 그 때는 어린 마음에 도망가기 바빴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해버린 어리석은 행동들이지만 어린 우리들의 한계였다.

장애우들이 이동약자로 인정받으면서 사회의 협의하에 활동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이 사실 불과 10년 안팍이다. 유년의 기억 속 장애우들은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인식 개선의 과정은 멀고 험하지만 각종 사고로 인한 중도 장애인들이 많아지면서 이젠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일이 돼 버렸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 않은 세상이지 우리와 무관한 세상이 아니다.

습한 여름날 외출 후 샤워는 우리 일상의 최소한이다. 하지만 그 일상의 최소한과 매일 씨름해야 하는 불편이 장애우의 삶이다.

만남 이후 길가의 노란 블록에도 눈길이 멈추고 뉴스의 기사로 지나쳤던 교통사고들이 내 아픔으로 다가오며 그와 이웃으로 첫 발을 뗐다. 인식의 성장은 감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함께하고 부딪혀야 아픔을 감지할 수 있다. 진정한 동행은 느낌으로는 부족하다. 부딪히고 충돌한 후에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가능하다.

우산을 씌어주는 것보다 비를 같이 맞는 것이 동행자의 길이라면 장애우와의 동행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같이! 따로 또 같이! 가치를 나누는 동행이 필요한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편견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성장을 실행에 옮길 때 동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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