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에 허 찔린 한국, 日 허점 제대로 찾고 있는가
[사설] 日에 허 찔린 한국, 日 허점 제대로 찾고 있는가
  • 서오복
  • 승인 2019.07.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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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정월 일본에 파견됐던 조선의 통신사가 돌아왔다. 그들이 조선을 떠난지 딱 1년만이었다. 그들과 함께 무례한 내용으로 가득찬 토요토미가 보낸 답서도 같이 왔다.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뜻을 돌려 말한 것인데도 둘로 갈라진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제대로 대비를 못했다.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들의 보고 내용이 서로 달랐다는 것도 문제였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처들어 올것이라고 했다. 동인 김성일은 민심을 동요시키는 괜한 주장이라며 반대 주장을 폈다. 결국 토요토미는 이 보고가 있은 지 1년 4개월뒤 20만 대군을 이끌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임진왜란 발생 400여 년이 지난 2019년 7월 1일, 일본 아베 정권은 한국에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그야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급소를 정확이 찾아내 공격한 정밀 타격이었다. 당하는 우리 입장에선 허를 찔린 꼴이 됐지만 공격하는 일본측에선 여러 번 공격할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정명가도와 같이 노골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요즘 같이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우리 정부가 시도만 했다면 지난 8개월 간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또 실제로 전직 지일파 관료, 일본내 지한파 경제인 및 학자들이 일본 아베 정부의 보복 계획을 여러 차례 우리 정부 외교 안보라인 당국자들에게 비선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안이한 태도다. 작년 10월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들려오는 여러 보복설에 대해 "설마 그렇게 까지 하겠어"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정부의 대응 방법을 보면 정말 우리 외교·안보라인이 아무 준비없이 허송세월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한다.

대책없이 멍하니 있다 허를 찔린 것 보다 더 한심한 것이 있다. 우왕좌왕 허둥대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반격하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 없이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것이나, WTO 제소로 모든 것이 해결될 듯 호기를 부리는 것이다.

허를 찌른 상대의 공격을 받고 취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다. 우선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싸움을 끝내는 것이다. 두번째는 상대를 피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36계 전략이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는 우리에겐 이 전략은 해당되지 않는다. 세번째는 지금 당장은 자존심 상하지만 상대의 허점을 찾을 때까지 상대의 마음을 달래가며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시간을 벌어 그 사이 상대의 허를 찌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세번째 전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싸우겠다는 사람이 상대를 파악할려는 노력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상대가 처한 상황과 상대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우리의 대응 전략이 세워져야 할텐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국내 유력 미디어들도 이번 만큼은 정부 의견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앙된 국민 여론에 호응하려는 듯 일본 여론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도 방향을 미리 정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편집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어서 사태를 풀어 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에게 떨어지게 된다.

지피지기는 싸움에 있어 기본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에 대해 일본 국민 60% 정도는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7일 일본 TBS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58%는 '타당하다', 24%는 '타당하지 않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번 조치가 발표된 후 7월 1일 부터 4일까지 보도된 일본 내 주요 언론사 사설을 통해 일본 언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보수 신문인 산케이와 요미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도와 진보 신문 위주로 논조를 확인해 봐도 일본 전체 여론의 향배를 알 수 있다.

중도 신문으로 평가되는 닛케이는 7월 1일자 사설에서 "징용공 문제의 1차적 책임은 한국에 있으니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아베의 이번 조치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진보 신문으로 분류되는 아사히도 7월 3일자 사설에서 "징용공 문제 관련 한국 정부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다. 지난달 한국측이 보여준 대안(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반반씩 기금을 만들어 피해자에 배상하자)은 일본 기업자금이 전제돼 있어 일본측으로선 수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역시 진보신문 마이니치도 7월 4일자 사설에서 "징용공에 대한 배상은 한국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고 해왔다. 한국은 일본측이 제안한 중재위원임명(제3국 중재위)에 응하지 않고 한·일 양국 기업이 위자료를 갹출하는 방안을 제안해 왔다. 일본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썼다.

또한 일본의 대표 경제단체인 '일본경우회' 사쿠라다 간사는 이번 사태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일본 재계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쿠라다 간사는 "우선, 이번 조치는 WTO규정에 기반한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정부의 메시지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여 조속히 한·일 경제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해 일본 재계 역시 아베 정권의 생각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쿠라다 간사는 이어서 "이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한국 수출규제 조치의 결과는 일본 보다는 한국이 받는 임팩트가 훨씬 클것이다. 한·일 간 잘 조정되지 않아서 한국이 화이트리스에서 제외되는 사태로까지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한편, 지한파 마쓰타니 모토카즈(松谷基和·44) 센다이 토호쿠가쿠인(東北學院)대학 교수(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지한파 학자)에 따르면 "일본이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를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본 기업의 한국 재산에 대한 법원의 강제 집행결정이 내려질 경우 일본 정부는 분명 수출 규제 범위를 넓히는 등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베가 이런 강공을 선택한 것은 최근 돌아가는 여론 추위를 볼 때 정권 내부에서 이런 식의 강경 조치를 취하더라도 국제사회나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선것 같다"고 말하며 "제3국 중재위 설치 요구를 일단 받아들여 시간을 확보한 뒤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방향은 맞지만, WTO 제소가 만능 카드는 아니다

WTO는 회원국간 제소 판정을 위한 기구로 '분쟁해결기구(DSB)'를 두고, 그 안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위원회'와 임기 4년의 위원 7인으로 구성된 '상소기구'를 두고 있다.

문제는 2심격인 이 '상소기구'에 현재 3명의 위원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역 분쟁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맞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WTO가 못마땅했던 미국이 임기 만료된 유럽과 개발도상국 출신 위원들의 후임 선출에 계속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는 12월이면 남아있던 인도 등 2명의 위원 임기마저 끝난다. 중국 출신 위원 1명만 남게 되면 업무가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이번 사건을 우리가 WTO에 제소해봤자 판정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아베 움직일 수 있는 트럼프, 미국 내 여론에 민감

우리 정부는 이번 조치가 '미국 우선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정확한 데이터와 촘촘한 논리를 가지고 트럼프 외교안보 라인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언론을 통한 미국 내 여론 전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아베의 막나가는 행동을 제지하도록 트럼프를 움직일수 있다. 곧 재선을 치러야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 내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베의 이번 조치가 미국 우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국제무역질서까지 와해시키고 있다는 것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아베의 이번 조치가 퀄컴, 애플,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 대표 IT기업들이 5G 시대를 대비해 준비해온 각종 프로젝트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설령 퀄컴, 애플 등 반도체 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 제작을 위해 삼성뿐 아니라 TSMC 같은 기업과 거래하고있다 한더라도 단일 거래선이 지닌 위험이 크기 때문에 TSMC와 경쟁시킬 삼성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미국 IT 기업들에게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문제는 북한...우리 뜻대로 움직여 줄지 미지수

북한이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자기들 코가 석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하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다. 

아베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다" 고 비꼬았다. 아베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할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할 판이다. 그것이 일본인 납치문제 진전을 위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것이라면 더없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베의 NHK 인터뷰가 이렇게 들린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움직일 힘이 있다면 그와 담판을 짓고 싶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크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라고. 아베의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해 남·북·일 3자회담을 성사시키고 의제중 하나로 일본인 납치문제를 올리 수있다는 조건으로 무역 보복조치를 풀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우리는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를 우리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산업을 발전시킬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베에게 당한 일격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베의 무모한 도발에 오히려 감사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디테일 없는 호기나 설익은 애국심에 기대는 방식이 아닌,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을 기반으로 정확한 데이타와 촘촘한 논리가 뒷받침된 대응방식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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