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인문학여행 이야기] "놀아본 사람만이 인생이 놀이처럼 즐거울 수 있어"
[오승주의 인문학여행 이야기] "놀아본 사람만이 인생이 놀이처럼 즐거울 수 있어"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7.2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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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놀이라는 소통으로 만나다.
오승주 작가(추억의 뜰)
오승주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석휘는 도서관 안을 길고양이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숨은 색깔 찾기 시간! 색깔의 눈으로 주변의 물건을 골라주세요"라고 했더니 자신의 색깔을 찾는다면서서 1분 넘게 도서관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런 석휘를 졸졸 따라다녀 갑자기 '술래잡기'가 되고 말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때 아닌 볼거리에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이 『여자 몸 사용 설명서』였다. 눈을 사로잡는 붉은 색깔 책을 골랐지만 아이들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오늘은 '물감 결혼식 놀이'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색감(色感)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놀이로 이것만한 게 없다. 첫 번째, 아이들이 물감 다루는 솜씨가 익숙한지, 두 번째, 물감을 과감히 사용하는지, 세 번째, 자신이 발견한 물건에 가깝게 색깔을 만들어내는지를 알아본다.

놀이를 탄생하게 해준 그림책 《파랑이아 노랑이》 (파랑새어린이)를 읽어주고 저마다 발견한 물건을 가리키며 자신이 본 색깔을 말해달라고 한다. 이것을 '색깔 대화'라고 부르는데, 자신이 본 물건의 색깔과 자신이 직접 만들어본 색깔을 비교하면서 색감을 키운다.

'결혼식'이라는 은유를 타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엄마 색깔(원색)', '아빠 색깔(원색)', '아이 색깔(혼합색)'이 담긴 '가족사진'을 스케치북에 그린다. 색깔 대화는 반드시 메를 해둬야 어린이들이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다. 가족사진을 가장 많이 만든 이가 승리하는 놀이.

초등학교 1학년 강준석 어린이가 만든 색깔 가족사진. 아이보리 색깔의 책장을 표시했고, 그 색깔을 만들기 위한 원색을 엄마, 아빠, 형으로 묘사했다. 비록 한 가족에 불과하지만 물감 결혼식 놀이의 정석을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강준석 어린이가 만든 색깔 가족사진. 아이보리 색깔의 책장을 표시했고, 그 색깔을 만들기 위한 원색을 엄마, 아빠, 형으로 묘사했다. 비록 한 가족에 불과하지만 물감 결혼식 놀이의 정석을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준석이가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 '형 색깔'을 가족사진에 담은 것이다. 말해주지 않은 성취를 할 때는 폭풍 박수를 쳐준다. 처음에 어리이들은 자신이 상상한 색깔과 실제 섞어본 색깔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이 만들려는 색깔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색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에 자연스레 다른 물감을 쓴다. 이런 것이 놀이의 묘미다.

'색깔 가족사진'에 들어가는 것들은 엄마 색깔, 아빠 색깔, 아이 색깔, 물건 이름, 그리고 자기 이름. 3학년 이상 어린이들은 비교적 색감이 풍부하기 때문에 곧잘 하지만 저학년 남자 어린이들에게는 놀이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준석이에게 그림 책 표지를 보여주면서 이거는 엄마 색깔, 이거는 아빠 색깔, 이거는 아이 색깔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의 색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해솔이가 갑자기 다가와 손을 내민다. 빨간 물감으로 가득 칠한 손바닥을 내밀며 환하게 웃는다. 피가 묻은 모습을 상상했을까? 나는 공포영화를 본 사람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검음질쳤다. 해솔이의 얼굴에서 묘한 만족감이 스쳤다.

 

해솔이(왼쪽)가 손바닥을 붓처럼 사용해 시뻘건 색깔을 칠했다. 하얀색 티셔츠에 묻은 물감들이 정겹다. 일곱살 석훈이(오른쪽)는 티셔츠 디자이너처럼 연두색 티셔츠에 알록달록 물감을 묻혀 놨다.
해솔이(왼쪽)가 손바닥을 붓처럼 사용해 시뻘건 색깔을 칠했다. 하얀색 티셔츠에 묻은 물감들이 정겹다. 일곱살 석훈이(오른쪽)는 티셔츠 디자이너처럼 연두색 티셔츠에 알록달록 물감을 묻혀 놨다.

 

손바닥을 붓으로 쓸 수 있다고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놀라운 발견이다. 그 옆에 일곱 살 석훈이는 연두색 티셔츠를 물감으로 디자인했다.

물론 좋았던 것만 있었던 건 아니다. 놀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 부모님이 했던 말이 진하게 남아 있다. 

"바닥에 흘릴까봐 물감으로 놀 생각을 못했어요"

물감에 제대로 덤벼들지 못하는 아이, 마치 지저분한 물건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는 아이, 물감을 개미 눈물만큼 짜내는 아이들이 무엇에 영향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사정이 이러한데 손바닥을 물감 붓으로 사용하고 티셔츠에 물감 디자인을 입히는 해솔이와 석훈이가 고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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