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의 삶과 문학 이야기] 담장을 허문 집
[이연자의 삶과 문학 이야기] 담장을 허문 집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8.08 0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연자 작가(추억의 뜰)
이연자 작가(추억의 뜰)

 

“이를 어쩌죠 미안해요. 잠시만요”

초로의 그 여인은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들고 와 내 스커트를 닦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 집은 담장이 없다. 폭염으로 한껏 달아 오른 마당의 지열을 식히려 수돗가 옆에 돌돌 말려 있던 긴 호수를 풀었다.

화단에 물을 주고 마당에 또 다시 물을 뿌리며 폭염속의 열기를 잠재우고 있었다. 호수의 물줄기가 그녀의 손을 잠시 벗어나는 순간 그만 그 속사포 같은 물줄기는 바로 그 집 앞을 지나던 나로 향하는 불상사를 낳았다.

 

담장 없는 집의 꽃계단은 그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헤아린다. 담장 없는 주택가 골목이 주는 아기자기한 기쁨이 크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담장 없는 집의 꽃계단은 그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헤아린다. 담장 없는 주택가 골목이 주는 아기자기한 기쁨이 크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그 물줄기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당에서 뽀송뽀송 하게 말린 그 수건만으로 이미 불쾌지수를 마이너스까지 끌어내렸다. 느닷없는 사건의 발단은 그 집이 담도 없고 대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한가로이 물줄기를 뿜어내며 폭염을 달래던 그녀와 나의 느닷없는 만남이었다.

폭염의 소나기같이 시원한 길을 걸었다. 대문이 없이 골목 담장을 무너뜨린 그 길을 지나며 동화 속 마을처럼 예쁜 그 골목이 사랑스러웠다. 도심 속의 어느 골목. 아파트에 갇혀 산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

유년의 기억 속 고래 등 같은 집의 담장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그 높은 담장에는 철조망이며 깨진 병들의 뾰족한 이빨이 담장위 시멘트에 박혀있었고 그것은 그 멋진 집을 흉물로 만들었다.

간간이 담장이 장미 덩굴로 덮인 집을 만나면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장미 덩굴 집의 주인은 왠지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할 거 같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담장 없는 집은 지나는 사람들 누구나 그 집의 마당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계단에 나란히 놓여 가족들이 오가는 길의 작은 기쁨이 되는 꽃들.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배려하는 꽃 계단이 주는 기쁨도 적지 않다.

주인이 수도 호수를 열어 꽃밭에 물을 주고 자동차를 세차 한다. 시멘트 담장에 가로막혀 들꽃 하나 피울 수 없던 그 삭막함을 담장을 없애면서 꽃길로 만들었다. 대문이 없어 앞집과 싫든 좋든 눈인사를 나눠야 한다. 계획된 도시미관이지만 이웃 간의 훈훈한 가교가 될 것이다.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담이 없어 불안하기 보다 그 집 마당의 초록이 주는 평화가 더 사람스럽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담이 없어 불안하기 보다 그 집 마당의 초록이 주는 평화가 더 사랑스럽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저녁이면 된장찌개 냄새가 담장을 바로 넘는다. 주인장의 하모니카 소리도 골목을 지나는 뭇 사람들에게 선물로 다가온다. 담장을 넘어 삭막한 도심 골목을 훈훈하게 해준다. 그 골목은 으슥한 밤길도 두렵지 않다. 대문도 없고 담도 없어 코앞의 이웃들이 든든한 보디가드다.

담장의 꽃 그림을 벽화로 그려 꽃이 핀 이야기가 있는 집을 만드는 것도 훈훈하지만 담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꽃을 심어 꽃향기를 직접 맡을 수 있다면 우린 더 친근한 이웃사촌이 될 것이다.

허물어진 담장 그 자리에 나란히 핀 들꽃들이 폭염의 소나기처럼 짜릿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동화 속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 행복에 젖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