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화이트리스트' 충격
[김수종 칼럼] '화이트리스트' 충격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8.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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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스푸트니크호 충격, 미국 NASA 창설 게기
커제 무너뜨린 알파고 충격, 중국인들 AI강국 꿈꿔
화이트리스트 충격, 일본 능가하는 과학기술 개발

 

김수종 고문(뉴스1)
김수종 고문(뉴스1)

한국이 '화이트리스트'(Whitelist) 충격에 빠졌다. 일본 아베 정권이 전략물자수출 우대국 목록, 즉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버리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배경은 복잡하지만, 아베 정권은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로 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제조업과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그 충격파 속으로 들어갔다. 정부는 사실상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선언했고, 기업들은 비상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산 불매 운동, 일본계 가게 이용 안하기, 일본 여행 안가기 등 갖가지 반일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반일 촛불집회도 번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북핵 문제 대응에도 버거운 한국은 한·일 무역전쟁까지 겹치면서 위기의 삼각파도에 휩싸였다.

지금 한국이 처한 화이트리스트 충격을 보며 두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은 냉전에 돌입했다. 핵무기를 가진 두 강대국은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당시 세상사람들은 인류 최후의 날이 될지도 모르는 3차 세계대전을 상상하며 살아야 했다.

냉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57년 10월 4일 미국 정부와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려 지구궤도를 돌게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원자탄을 B-29 폭격기에 실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하여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으로서는 불과 12년 만에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 탑재된 소련의 원자폭탄이 미국 본토에 투하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공포감을 느꼈다.

소위 '스푸트니크 충격'은 미국의 과학기술이 소련보다 한참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온 미국 정부와 국민의 자만심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소련에 되져 있다는 각성이 미국의 태도와 정신을 바꿔놓았다. 미국은 항공우주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젊은 연구 학자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잡다한 항공분야 기구를 정리하여 1958년 7월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해 우주 개발에 본격 돌입했다. 이어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뉴프런티어' 독트린을 발표했고, 그의 계획대로 미국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11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스푸트니크 충격이 미국의 달 유인탐사의 모멘트가 됐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인류에게 준 기술적 충격은 무엇일까.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많은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마 인공지능(AI)이 아닐까 싶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세돌을 4대1로 물리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충격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게 스푸트니크 충격에 비견되겠느냐고 말하는 삼람도 있지만, 세계적 인공지능 전무가로서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을 섭렵한 후 AI 벤처투자가로 활동하는 리카이프는 그의 책 'AI슈퍼파워스'에서 어떻게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격하게 되었는지를 알파고 충격으로 풀이해서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리카이프는 2017년 5월 알파고와 중국의 천재 기사(棋士) 커제(柯洁)의 대국을 일컬어 중국판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규정했다. 알파고가 3대0으로 커제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린 이 세기의 대국은 중국인에게 도전과 영감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AI에 미국을 능가하는 투자를 했고, 중국인들을 AI운동에 뛰어들게 했다고 주장한다.

리카이프는 2016년 3월에 벌어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 대해서도 의미 있게 해석을 내렸다. 4대1의 대승을 거둔 알파고의 다섯 차례 대국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중국인이 무려 2억8000만 명이었으며, 중국인은 이 대국을 통해 AI에 대한 충격과 함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알파고-이세돌의 대국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 커제를 차례로 무너뜨리는 것을 보며 미국인과 중국인은 다른 사고방식을 보였다는 게 리카이프의 관찰이다. 실리콘밸리 미국인들에게 알파고의 승리는 기계가 인간에게 승리했고, 서양 기술기업들이 전 세계를 석권했다는 자부심 정도였다. 그러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베이징 중관춘은 알파고를 보며 AI열기가 박동했고, 이 열기는 곧 중국정부와 연결되며 AI강국의 꿈을 부풀리는 모멘트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일 무역충돌이 벌어지자 정부는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100개 전략적 핵심 품목을 선정, 집중 투자해 5년 내 공급안정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당행한 일이다. 총칼을 들고 일본에 맞서 싸울 일이 아니라면 이번 화이트리스트 충격에 대한 궁극적 처방은 무었일까. 일본을 능가하는 과학 기술개발에 국민적 심혈을 쏟는 일이다. 정부는 단기효과 기대를 국민들에게 제시해주고 싶은 정치적 욕망이 급한 모양이지만, 그게 1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긴 호흡으로 기초를 다져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50년 전 미국은 스푸트니크 충격을 소련 우주과학기술 추격의 모멘트로 삼았다. 2년 전 중국은 알파고의 충격을 미국을 능가하는 AI강국 꿈의 모멘트로 활용했다. 두 나라 모두 충격을 기술개발의 계기로 삼았고, 그 결과가 비약적인 기술발전과 산업응용으로 이어졌다. 이 두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주류사회의 진정한 각성이 일어났고, 국민의 마음이 공명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을 이끌고 있는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정부청사를 채우고 있는 정치 엘리트와 공직자 등 우리나라 주류사회 집단에게 묻고 싶다. 화이트리스트의 충격에서 어떤 각성을 하고 있는가. 밖을 향해서는 일본을 욕하고 분노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 깊숙히 각성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국민의 공감을 끌어낼 모멘트를 만들기 힘들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말 위기가 도래했을 때 정파적 이익이나 개인의 손익에 앞서 한번쯤 국가의 위기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국민에 희망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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