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혀끝에 남은 어머니의 그리움
[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혀끝에 남은 어머니의 그리움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8.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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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가지볶음 풍미, 50살 넘어도
아들 혀끝에 추억으로 화석이 되었다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여름철 식탁에 양념처럼 올리는 메뉴가 있다. 미역 냉채, 가지 냉국이다. 한 가지를 더해, 가지는 볶음만으로도 풍미가 가득하다.

유년시절 여름이면 어머니가 밥상에 줄곧 올려준 가지볶음. 문득 가지볶음을 조물조물 무치며 한 입 먼저 입맛을 다시려고 들었던 고개를 한참이나 숙이지 못했다. 눈물이 잔뜩 고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멍하니 쳐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간을 보실 때 마다 고개를 들어 입에 넣어보시던 그 뒷모습이 문득 떠올라 가슴 한 편이 뻐근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간신히 참았지만 식탁에 올리자마자 급기야 의자에 턱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도 참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라 어디 둘 곳이 없었다. 폼 나는 요리를 한답시고 가지를 구워 두 반장에 굴 소스를 버무려 무쳤다. 보타닉 가든이 수놓아진 세련된 플레이팅은 멋지지만 유년시절 먹었던 가지볶음이 아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만들어주시던 살살 녹는 가지볶음. 특별한 양념이 없어도 그 짭조름한 살살 녹는 맛이 떠올라 울컥 했다. 따신 밥에 척 걸쳐주면 황후의 미각이 따로 없던 그 시절의 밥상머리 사랑이었다.

여름철 별미인 가지볶음. 누구나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지볶음의 풍미가 따로 있다. 한껏 멋을 낸 가지볶음이지만 그 시절 어머니의 손맛은 따를 수가 없다.
여름철 별미인 가지볶음. 누구나 가슴속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지볶음의 풍미가 따로 있다. 한껏 멋을 낸 가지볶음이지만 그 시절 어머니의 손맛은 따를 수가 없다.(사진=추억의 뜰 제공)/한국관세신문

이젠 만날 수 없지만 어머니의 향기는 가지볶음에 남았다. 먹는 음식이 주는 추억의 시간도 사람의 향기처럼 만리를 더 넘는다. 작년 그 뜨겁던 여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해 주시던 가지 볶음, 가지 냉국은 건강식은 물론이고 혀끝에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에 가족의 추억으로 남은 음식들이다.

맛있는 먹거리 앞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고 어머니의 칼질 소리 따그닥 따그닥 아직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가지볶음 하나에 어머니의 사랑이 떠오르고 그 맛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추억이 아름답고 뭉클한 이유다.

유년시절 여름이면 식탁에 둘러 앉아 아버지 어머니와 즐겨먹던 가지 볶음. 아버지는 양푼에 가지볶음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드셨다.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도 잊지 않으셨다.

이젠 두 분은 떠나셨지만 가지복음에 두 분 과의 추억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 시절엔 반찬이 별거 없어서 젓가락 갈 곳이 드물어 자연스레 가지볶음에 손이 갔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리 솔깃할 것도 없는 반찬이다. 우리들 세대는 어머니를 그리는 그 인정에 오래된 손맛을 결코 잊지 못한다.

 

어머니 자서전에 담긴 아들의 편지.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가지볶음의 맛과 사랑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추억했다.
어머니 자서전에 담긴 아들의 편지.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가지볶음의 맛과 사랑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추억했다.(추억의 뜰 제공)

한 아들이 어머니의 자서전에 ‘어머니 전상서’를 넣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가지볶음의 풍미가 50살이 훌쩍 넘어도 혀끝의 강렬한 추억으로 화석처럼 배어 있다며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담았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아이들이 엄마의 손맛 정성들인 반찬을 먹고 자라는 것이 이젠 너무 귀한 일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정서가 피폐해져가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깃든 식탁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때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에 둘러앉은 식구들. 이젠 기록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지만 밥상머리 사랑, 그 식탁문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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