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권춘자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결국 핏줄이야"
[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권춘자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결국 핏줄이야"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9.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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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홉 살 때 어머니는 개가하셨고
나 열두 살, 언니가 어느 날 시집을 갔어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언니도 겨우 열다섯 살 갈래머리 계집애였어. 기쁜 날에 난 혼자 남은 외로움으로 하염없이 울었지. 언니는 추자(秋子) 나는 춘자(春子). 부모님은 두 자매만 남겨놓으셨고 우린 부모님 대신 작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고 있었어. 그래서 엄마처럼 의지하던 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컸었지.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어. 내가 시집 간 그 해에 흉년이 들어 입하나 덜겠다고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시집을 갔지. 아버님은 일본에 가셨다가 내가 엄마 젖을 겨우 뗄 무렵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얼굴은 마음으로도 그릴 수 없었어.

내가 아홉 살 때 어머니는 개가하셨고 그 빈자리를 작은 어머니가 매워주셨지. 언니와 나는 그래서 더 살가운 자매였어. 둘이 손 꼭 잡고 들로 산으로 다녔고 한창 쌍둥이처럼 다니던 그 때 언니는 울면서 시집을 갔지 뭐야.

언니를 보내는 나도 천애고아가 된 거 같아서 뒤꼍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 우리 고향 청성면 능월리에 아직 살고 계신 우리 추자 언니는 여든 다섯 살이야. 아들 여섯 딸 하나 7남매 그 아들들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너무 고생해서 다리가 아파서 집에만 계셔.

둘째 아들내외가 모시는데 이젠 잘 걷지를 못해. 나도 버스를 갈아타면서 언니를 보고오자면 버스에서 오르락내리락 이젠 힘이 부쳐. 그래서 우리 막내 선호가 다니러 온다면 더 반가워. 선호가 마음 씀씀이가 다정해서

 

어릴 때 춘자라는 이름대신 순하고 착하다고 경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던 어르신. 그래서 가족 사랑도 따뜻하시다. 전화걸어 안부를 물어주는 아들에 대한 마음이 유독 애틋하신 까닭이기도 하다.
어릴 때 춘자라는 이름대신 순하고 착하다고 경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던 권춘자 어르신. 전화로 안부 물어주는 아들에 대한 마음이 유독 애틋하다.

 

어머니 이모 살아계실 때 얼굴 한 번 이라도 더 보시게 이모네 가셔요

혼자서 언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 보다 아들이 태워주는 차로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 흐뭇한 것은 아마 핏줄로 흐르는 정 때문 일거야. 지금 나한테 가장 큰 효도지. 의지할 곳 없던 그 시절 언니는 엄마 같은 동무였거든.

결혼해서 5남매를 낳고 우리 금쪽같은 자식들 엄마가 되고 보니 일찍 아버지와 사별하고 개가한 어머니를 여자의 마음으로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 아홉 살 때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어머니는 외갓집에 나를 떼놓고 떠나셨어. 울면서 따라간다고 하니 외숙모가 나를 붙드셨지. 자식 떼놓고 가는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 사정을 모를 땐 원망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속 타는 사정이 있겠지. 그리 생각해. 나를 떼놓고 떠난 어머니 때문에라도 난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자식들 지키려고 참고 살았지 뭐야 그랬더니 이름처럼 다시 봄날이 오네.

이젠 그 험한 산들을 다 넘고 넘어 이젠 괴로울 일이 없어. 돈 괴로울 일도 밥 괴로울 일도 없고 사람 괴로울 일은 더 없지. 인생이 그러려니 알게 됐으니까. 사는 게 꿀맛이야. 그런데 말이야 거짓말은 살살 늘었어. 막내 승호가 전화를 잘해

엄마 어디 아픈데 없어요?”

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아야 걱정 마. 나 하나도 안 아프다.

그 거짓말은 양심에 하나도 안 찔려. 물론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지만 아직 건강한건 역시 아들의 전화만한 보약이 없어. 바쁜 틈에 전화 걸어주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되는 보약이 바로 자식이야. 효도가 별게 아녀 전화 한 통이면 부모가 힘이 나. 우리 동무들도 다 같은 마음일거야. 부모 자식도 작은 정을 나눌 때 더 애틋하고 살가운 거야결국 핏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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