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인생 막차 티켓
[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인생 막차 티켓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0.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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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여행을 가는 날 가장 어여쁜 모습이어야
죽음을 비극으로 맞지 않는 자세에 숙연해져

 

 

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여보, 빨간 넥타이로 해요."

"이 나이에 무슨 빨간 색이야?"

여든의 강 선생님은 빨간 색 넥타이가 어색했지만 사모님의 등쌀에 할 수 없이 낯간지러운 차림새에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양복까지 최고급 150수로 젊은 시절 미끈하던 청춘으로 돌아온 기분에 거울 앞에선 겸연쩍었지만 내심은 설레었다.

사모님과 강 선생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사모님의 콧노래까지 곁들여지는 건 아마도 기쁜 날 이라고 짐작해본다. 옷장을 열고 사모님은 강 선생님의 멋진 양복에 걸맞은 분홍색 실크 블라우스를 골랐다. 차르르 흘러내리는 실크의 감촉과 옷 맵씨까지 두 부부의 의상은 마치 파티에 참석이라도 하는 양 화려하고 세련됐다.

사모님은 빨간 립스틱으로 단장을 마무리하고 평소에는 부군이 핸들을 잡았지만 그날은 여사님이 직접 핸들을 잡았다. 그만큼 설레는 날이었다. 바로 두 분의 영정사진 찍는 날이었다. 부군은 80세 여사님은 78.

강 선생님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동행이었지만 영정사진을 받아든 강 선생님이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사진속의 강 선생님이 너무 근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모습을 이미 디자인했다.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살아야 할 책임을 하나 더 얹었다. 부담이 아니라 설렘으로 다가왔다.

 

영정사진속 사모님. 화려한 실크브라우스와 환환 미소가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를 일깨운다.
영정사진속 사모님. 화려한 실크브라우스와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를 일깨운다.

 

사모님은 얼마 전 지인의 문상에 갔을 때 여든이 넘은 고인의 영정사진을 보고 불편함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영정사진속의 여인은 마흔 중반의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고인도 자녀들도 미처 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앨범속의 사진을 뒤지다 찾아 낸 사진이 분명했다. 성의 없는 사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제대로 된 영정사진도 없이 떠난 고인에 대한 애석함이 더 컸다.

뒤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던 만큼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가치는 더 커졌다. 사모님의 말을 빌려보면 인생의 막차를 타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가장 멋진 여행을 가는 날 여권 사진도 가장 어여쁜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죽음을 맞이하는 여사님의 자세에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음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 삶에 순응하는 마음은 더 귀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사모님이 평소 죽음을 바라보는 소신이시다. 가장 예쁜 모습 가장 성숙한 모습으로 내 발로 영정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 사회에 웰 다잉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늘 피력하신다.

죽음을 맞이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오늘 하루에 충실할 수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그래서 70이 넘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영정사진 찍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시다.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음 자세로 영정사진을 찍는 날. 가장 행복한 날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설계보다 정돈 된 죽음의 디자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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