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둥시 곶감처럼 내 세월도 단단하고 찰졌네
[이연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둥시 곶감처럼 내 세월도 단단하고 찰졌네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0.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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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모산마을 사시는
김월렬(1936~) 어르신의 자서전을(이연자 작가)
본지 People 코너에 3회로 나눠 연재합니다

 

이연자 작가(추억의 뜰)
이연자 작가(추억의 뜰)

 

가을이 익어간다

모산 마을만큼 나이 먹은 감나무에서 투욱 툭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라. 둥시 깍아서 마루 위 시렁과 부엌 시렁에 감꼭지를 묶어 두면 살랑살랑 바람에 말랑말랑 설탕 덩어리 곶감으로 다시 태어나지.

감나무는 봄이면 제 혼자서 하얀 감꽃을 피우고 늦가을이면 나무에 매달려 새들에게 공양밥으로 먹힌다. 야무지게 한 해를 산다. 지독스리 힘든 해거리 다음이라 올해는 멀리 보이는 둥시가 빽빽하게 달려 보이네.

63년 전 내가  시집올 때도 회관 멀리 언덕에 서 있던 둥시 감나무는 세월의 풍파 고스란히 담아낸 내공으로 올해 유난히 잦았던 태풍에서도 끄떡없었지. 둥시만큼이나 내 세월도 그러하구마.

 

김월렬(83) 어르신은 마을회관에 매일 나오셔서 새대때부터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60년 된 동무들과 소일을 하신다. 이가 다 빠졌지만 스무살 새댁시절의 수줍고 고운 미소는 여전히 갖고 계신다.(사진=추억의 뜰 제공)
김월렬(83) 어르신은 마을회관에 매일 나오셔서 새댁 때부터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60년 된 동무들과 소일을 하신다. 이는 다 빠졌지만 스무살 새댁 시절의 수줍고 고운 미소는 여전하시다.(추억의 뜰 제공)

 

출생 신고를 일찍하면 자식 잃는다는 노파심에 부모님들이 나 태어난 지 5년이나 지나서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청산면 느럼실(금리)에서 16살에 친정이 모덕리로 이사왔는데 밥은 먹고 살았으니 잘 사는 축에 들었다. 

모산에 사는 이종 사촌이 멋진 총각 하나 있다고 중신을 서서, 우리는 결혼 전에 요즘 아이들 말로 데이트라는 걸 몇 번 해봤다. 이름이 정수용이라 불리는 멋쟁이 총각은 모산에서 나고 자라서 평생을 모산에서 살았다.

인물 훤칠하고 말 잘하고 싹싹한 그이는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옺을 쫘악 빼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모덕리 마을 입구 느티나무 옆으루다 세워놓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고등학생 모자를 삐딱하니 쓰고 모자 창을 이리저리 만지며 의기양양하게 걸어왔다.

60년 전 그 땐 그이도 제법 근사했다. 삐까번쩍한 오토바이가 동네를 가르던 광음을 멈추고 얌전하게 서 있으면 동네 꼬마들로부터 어른들까지 오토바이를 만지다 뜨거운 엔진통에 화들짝 놀라고, 참으로 멋지다고 한마디씩 거들 때마다 나는 약간 으쓱해서 기분이 삼삼했다. 아마도 지금 외제차 만큼 뽀데 났을 거다. 빌려온 오토바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고운 꿈 하나 있었지

친정에서 결혼식을 하고 가마를 타고 모산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는 시집올 때 치마 한 죽, 몸빼 한 죽, 저고리 한 죽을 해왔다. 열벌이 한 죽이니 나도 혼수를 적잖이 했다. 이불보, 베갯보, 벽보도 광목에 십자수를 곱게 수놓았다. 십자수 놓는 책은 보기만 해도 고와서 손으로 살며시 만져보며 그렇게 예쁘게 살고 싶었다.

뽄(본) 대로 바늘에 고운 색실 꿰어서 몇 닢 뜨면 잎이 되고 꽃이 되고 번듯한 나무 위에 휘영청 달도 걸렸다. 아들 딸 잘 낳고 금실좋은 부부로 살겠다는 고움 꿈을 담아 한 땀 한 땀 완성했다. 마을 입구가 좁아서 트럭으로 실어온 살림을 소재지 배밭 강변에 내려놓고 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죄다 몰려가서 물건을 날라준 것이 아직도 고맙다.

아, 그런데 시집을 와서 허름한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를 열어보니 된장도 간장도 제대로 담기지 않은 빈 독 몇개가 전부였다. 시아버지는 한 분인데 시어머니가 두 분인 거라. 큰 시어머니는 딸 하나만 놓고 말아서 곧 작은 마누라를 들여서 아들 셋을 놓아서 첫째가 바로 나의 신랑이고 중간에 하나는 잃고 막내 시동생은 겨우 일곱 살이었다.

두 시어머니는 성격이나 머리 쓰는 것도 비슷해서 큰  싸움 없이 지내고 돈 돌아가는 것은 죄다 시아버지가 결정하셨다. 그 때는 그렇게 여자의 인생이 서글프기도 했다. 윗방은 우리 부부가 쓰고 안방은 큰시어머니 혼자 쓰시고, 사랑방은 시아버지와 작은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이 함께 썼다. 

처지가 다른 여럿이 식구가 되어 만났다. 바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끌어안았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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