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옥천군 안남면 모산마을 김월렬 어르신 (2회)
[이연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옥천군 안남면 모산마을 김월렬 어르신 (2회)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1.07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식 잃은 슬픔은 가슴에 묻다
비법 환을 만들어 팔아 집안을 일으켰다

 

이연자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이연자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슬픔을 가슴에 묻다

땅은 있었는데 두서없이 운영하게 되어 시아버지가 장리쌀(쌀 1말 빌리면 나흘 일해주고 갚는다. 장예쌀 이라고도 불렀다)을 해서 먹고 살았는데 그 와중에 남편은 자유당 출마 국회의원 선거운동 하느라 빛을 많이 졌다.

그 땐 활동 좀 하는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모양이든 선거판에서 입지를 다지고 싶어 했다. 선거를 도운 국회의원이 당선되면 덩달아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드나들던 곳이다. 그 모양새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지 싶다. 우리 집 양반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엔 부처님인데 술만 들어가면 곤조를 피우고 괴롭혀서 동네가 시끄러웠다.

윗마을 아랫마을 거나하게 술 취한 남정네들 소리가 저녁마다 들리던 때다. 큰 딸은 역시 살림밑천 이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평택에서 공장을 다니며 동생을 불러들였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입히고 키웠다. 같은 형제로 태어나서 어미 노릇을 하는 큰 딸이 대견하지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혼자 삭히며 가슴에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맏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헌신을 당연하듯이 여겼고 그 마음이 가정을 지키던 안타까운 때 였다. 둘째 아들은 샷시 만든느 일을 배워 우리에게 소도 사주고 땅도 사주었다. 학교 공부를 많이 못했지만 마음 씀씀이가 남달라 우리 집 대들보 같은 아들이었다.

그런 둘째가 배앓이가 끊이지 않아 밥도 못 먹으며 시름시름 앓더니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만에 췌장암으로 죽고 말았다. 그런 병이 있는 지도 몰랐던 무시무시한 암이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썩어가는 고통을 거기에 비할 수 있을까. 생때같은 아들을 보내고 웃고 밥도 먹으면서 나는 나대로 살아진다.

그 애를 낫게 할 수 있다면 미국에라도 보내려 했으나 암만 돈 있어도 못 고친다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을 난 그 때 똑똑히 알았고 그때부터 내가 혼절해서 정신이 나가더니 총기가 흐려졌다. 새끼 앞서 보내는 애미 마음은 절대 온전할 수 없다.

 

김월렬(83) 어르신은 마을회관에서 60년 된 성님 아우님 들과 매일 만난다. 서로의 집 숟가락 갯수까지 아는 사이지만 영감님 흉 볼때는 함박웃음이다. 시골 아낙으로 아온 그간의 삶은 고단했지만 노년은 따뜻하고 평안하다. (사진=추억의 뜰 제공)/한국관세신문
김월렬(83) 어르신은 마을회관에서 60년 된 성님 아우님 들과 매일 만난다. 서로의 집 숟가락 갯수까지 아는 사이지만 영감님 흉 볼때는 함박웃음이다. 시골 아낙으로 살아온 그간의 삶은 고단했지만 노년은 따뜻하고 평안하다. (사진=추억의 뜰 제공)/한국관세신문

 

비법 환을 만들어 팔아 집을 일으켰다   

모산은 숲이 우거지고 땅이 비옥해서 약초들이 지천이었다. 7월부터 겨울 될 때까지 논두렁 밭두렁에서 소태잎, 구절초, 인진쑥, 우슬뿌리, 또 한 가지가 뭐더라? 암튼 다섯가지 잎을 뜯어서 볕 좋을 때 바짝 말려서 절구에 빻아놓는다.

방앗간에서 아주 곱게 보릿가루를 내서 국수 반죽을 만들고 미리 만들어 둔 다섯가지 가루와 섞어서 환을 만들었다. 송편 빚듯이 정성들여 곱게 만들었다. 살림 밑천이었으며 상비약이라 모산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물단지였다. 거기다가 산에서 캔 칡을 깨끗이 씻어서 망치로 두들겨 부드럽게 한 후 가마솥에 삶는다. 물만 짜서 하루를 졸이면 끈적끈적하니 조청처럼 되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환에다 붓으로 칠하면 까무족족 반질반질해진다.

배 아프고 삭신 쑤시는 신경통에 특효 환인데 안남면 사람들 대대로 내려 온 집안 비법이다. 농사가 끝난 겨울에 나는 2가마니씩 만들었다. 그걸 옥천과 이웃 동네에 팔아서 큰아들 대학까지 가르쳤다.

사실 가르칠 여력이 없어 충남대 시험 치러 갈 때 면접에서 떨어지길 바랬는데, 내 어깨를 주무르며 "엄마, 합격했어요"하고 말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은 것도 이제 옛일이다. 공부 잘하는 내 새끼 학교 떨어지라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만은 먹고 살기도 힘든 때, 대학 공부 시키는 게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이모저모 살 궁리를 하면서 겨울 내 약초환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또 인생은 어쨌든 살아진다. <다음회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