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인문학 이야기] 그림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이은경의 인문학 이야기] 그림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2.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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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문화칼럼리스트
이은경 문화칼럼리스트

 

그림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래쪽 손을 그리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위쪽 손이 동시에 아래쪽 손에 의해 그려지고 있다. 어느 손도 다른 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자 한 것은 손 자체라기보다 한 손이 다른 손을 잉태하고 있는 모순적 순환 관계다. 

순환의 패러독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그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데,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형상을 연출한 화가는 꽤 있는 편이지만 에셔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화가들이 다분히 감성적, 비일상적 측면에서의 현실 초월을 꿈꾸었다면, 그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작업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것들을 다루면서도 공간 조작을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 설정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그림이 이상하고 모순적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그림 밖에서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진찌 손은 그림 바깥에 있는 에셔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 아티스트 에셔(M.C Escher)의 '그리는 손(1948)'
그래픽 아티스트 에셔(M.C Escher)의 '그리는 손(1948)'

 

에셔는 "진정한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되기 전에는 절대 그 이상을 볼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림 속에 함몰돼 있으면 그림 안의 잘못을 절대로 인식할 수 없다. 그림에서 벗어나서 봐야 비로소 잘못이 보인다.

우리가 살면서 봉착하는 문제들도 그 문제안에 있을때는 모른다. 그 문제에서 벗어나야 보일 때가 있듯이, 한 단계 높은 바깥 세계의 시각이야말로 에셔가 말한 '그들'의 시각이다.

또 뫼비우스 띠로 연결시켜 본다면 작품의 함의는 유기성이라 볼 수 도 있다. 각각의 개체가 떼어낼 수 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삼라만상의 무엇이든 따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기적 연결은 어떤 문제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은 대립항적인 관계로만 볼 수 없다. 뫼비우스 띠가 안팎 구분 없듯, 유기적인 상호 보안을 통해 새로운 의견을 도출하게 마련이다. 즉, 상생의 조화로 볼 수 도 있다. 관계와 갈등의 영역으로 확장시켰을 때…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작품해석이 가능하고, 실제로 많은 논문들에서, 자연과학·철학·사회과학 등에서 이 그림은 인용되어진다.

해석도 감상도 결국 감상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은경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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