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면, 비」 ...이정숙 시집
「뒤돌아보면, 비」 ...이정숙 시집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2.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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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기 쉬운 비라는 소재는 시인의
진정성 때문에 진지한 비유로 탈바꿈

 

이정숙 시인의 시집 '뒤돌아보면, 비', 도서출판 지혜
이정숙 시집, 「뒤돌아보면, 비」
도서출판 지혜

「뒤돌아보면, 비」

저녁비가 소슬하게 내린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불빛이 명멸하듯 시들어지면 빗줄기는 굳은 길목으로 파고든다

 

깊은 어둠속으로 흘러가는 길 어느 창백한 가로등 아래 서면

우수(憂愁)로 부르튼 날들 가슴깊이 젖어드는데

 

무심히 발길 닿는 곳마다 물웅덩이 마음속에 쌓인 눈물일까

끝내 비워내지 못한 채 서성이며 안개가 밀어낸 바람결에 

 

소리 없이 찾아 드는 슬픔 거기, 꺼지지 않는 한 시절

그 빗속을 거닐고 있다. 

 

비를 눈물로 비유하는 다소 상투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골목과 비를 함께 등치시키는 것으로 독특한 효과를 내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길이 이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이 슬픔의 정체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꺼지지 않는 한 시절'이라는 말에서 불빛처럼 항상 자신의 길을 밝혀주고 있는 어떤 그리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모든 슬픔의 근원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뒤돌아보면"이라는 제목 표현이다. 자신의 삶이 이 그리움으로부터 항상 멀어져 가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운 대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그것의 부재는 더욱 강화되고 그만큼 슬픔은 더 커져가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비라는 소재가 진지한 비유로 탈바꿈한 이유는 바로 삶을 대하는 이런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정숙 시집 「뒤돌아보면, 비」

도서출판 지혜,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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