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박승자의 사람사는 이야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12.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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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탄진 원창빌라 사람들의 26년 이웃이야기

 

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박승자 작가[추억의 뜰]

경계가 허물어진 인정의 향기가 폴폴 나는 대전 대덕구 신탄진 원창빌라 사람들, 26년을 이웃으로 식구로 살아왔다.

작은 행복을 매일 쌓아가는 26년 이웃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신탄진 대청 호반에서 책거리를 하며 웃음보따리를 풀었다. 감동은 덤이다.

<본문 발췌>

"우리 집에 손님이 왔다. 손에 식혜 상자를 들고 온 것을 보니 골목 앞 슈퍼에서 사온 모양이다. 그 슈퍼는 키 큰 사람은 제대로 서기도 힘든 천장 낮은 오래된 점포다. 

삐그덕 거리는 미닫이문을 열면 낮은 천장이 추억 사진 속 한 장면 같다. 식혜 상자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그런데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손으로 쓱쓱 먼지를 닦았다. 남들이 보면 오래된 빌라에서 맨 날 하하호호 웃고 즐긴다고 뭐가 즐겁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린 즐겁다. 매일 봐도 즐겁고 하루 종일 같이 다녀도 지겹지 않다. 할 얘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이젠 핏줄보다 더 진한 사이가 돼서 식구가 되었다. 26년 전 빌라 입주 동기로 이웃이 되고 이제 자매처럼 살고 있다. 한 집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띠띠띠띠릭 우리 집 번호를 언니가 알고 있다. 나는 동생네 비밀번호를 안다. 아이들도 갓난쟁이부터 같이 자라서 시집 장가를 가고 있다. 네 집 내 집의 경계가 허물어진 인정의 향기가 폴폴 나는 우리 원창빌라. 한복한 동네다.

3월 8일 신탄진 장날이면 아침 일찍 장에 나가 장바구니 한가득 이것저것 담는다. 갈치 고등어 튀김 나물 찐빵 순대 등등….검정 봉지가 터져나갈 것처럼 잔뜩 장을 봤다. 언니네 동생네 고모님네 다 같이 나눌 장이다. 난 오늘 대표로 장을 봤다. 우리 집에 모여 다 펼쳐놓고 필요한 걸 가져간다. 또 얼마나 박장대로를 하며 신나게 웃을 지. 우리는 이미 공동체다.

원창빌라 사람들 책걸이 하는 날. 이웃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초겨울의 대청호반에서 마음 온도를 높여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웃이야기와 만났다. 재미는 당연하고 감동은 덤이다.
원창빌라 사람들 책거리 하는 날. 이웃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초겨울의 대청호반에서 마음 온도를 높여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웃이야기와 만났다. 재미는 당연하고 감동은 덤이다.

원창빌라 김장하는 날

우린 왕 언니를 고모님이라고 부른다. 우리들의 고모님이 되셨다. 고모님 휘하 우리들이 1년 중 가장 큰 행사로 보는 원창빌라 김장하는 날. 다들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빌라 마당에 모였다. 전쟁 나가는 군인들처럼 보무도 당당하다.

"오늘은 현희네 집 김장했으니 하루 있다가 모레는 아라네네."

같이 김장한 언니네 한 포기씩 싸주고 나서 김치통에 김치를 담그고 나니 큰 통 작은 통 열 두통도 넘는다. "오늘은 백포기라 많이도 했다. 휴!" 말이 백 포기지 누가 다 먹겠다고 산더미처럼 김장을 했다. 따지고 보니 우리 입만 입이 아니었다. 자취하는 아들네 결혼한 딸 네 아직은 챙겨줘야 하는 동생들까지 나눠 줄 생각에 굳은 허리를 고추 세운다.

그리고 남은 뒷정리는 모두의 몫이다. 큰 통을 씻어 엎어놓고 주변에 물도 끼얹으며 마당을 깨끗이 정리한다. 차곡차곡 쌓여진 김장도 마지막 물질로 반지르르 해진 마당도 속이 다 후련하다. 수육을 삶아 김치에 싸서 한 입 크게 먹으면서 김장을 마무리 한다.

웃음소리는 담장을 넘어 골목으로 퍼져간다. 사람의 향기에 취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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