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의 삶과 문학이야기] 사시생과 길고양이 '삼순이'의 애틋한 동거
[이연자의 삶과 문학이야기] 사시생과 길고양이 '삼순이'의 애틋한 동거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01.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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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생의 소통결핍이 길고양이게 情 주기 시작
딸은 길고양이 6년차 할매 모시며 캣마미가 됐다

 

이연자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이연자 작가(사진=추억의 뜰 제공)

 

내 딸 보리는 사시생이었다. 나를 따라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귀국한 보리는 고3으로 편입했다.

입시시스템에서 특혜를 전혀 받지 않겠다고 선언 후, 혼자 힘으로 공부한 보리는 6개월만에 문과 100등에서 4등까지 올라갔다. 어릴 때부터 하루 500페이지씩 읽어대던 활자 중독자 였기에 가능했다. 나는 보리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인생이 무거울까 잠시 걱정했는데, 보리의 선택은 문학보다 법학이었다.

보리는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대로 사시에 대한 정보를 너무 늦게 알았다. 2차 시험을 위해 학원 강의를 몇 순환씩 돌려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법대 특성상 출결석에는 관대해서 일찌감치 사시로 눈을 돌린 학생들은 바로 서울 고시촌에 터를 잡고 학원에서 몇 년 씩 준비학습을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1,2차 동시 합격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보리는 2016년 마지막 사시 2차시험을 보게 된 몇 안 되는 지방대 출신 수험생이 되었다. 보리는 고군분투 책에만 매달렸고 몇 달 동안 남과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때가 계속됐다. 나름 살기위해 같이 밥먹는 모임도 했봤단다. 오로지 같은 시간에 고시식당 같은 테비블에 앉아서 말없이 밥만 먹고 헤어지는 모임이라고 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삼순이(추억의 뜰 제공)

사시생이라는 날 선 환경에서 비롯된 소통 결핍이 오면서 어느 날부터 고시촌 캣마미가 되었다. 하루에 입 한 번 뻥긋할 상대가 없어서 길고양이게 정을 주기 시작했고 길 고양이 6년차 할매를 모시기 시작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 할매, 삼순이를 원룸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여왕으로 변신시켰다. 시작은 본인의 소통 결핍이었지만 결국 생명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진화했다. 마지막 사시2차 첫날 시험을 마치고 좁은 원룸에서 보리와 잠을 자는데 내가 낯설어선지 삼순이가 밤새 울어대 보리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삼순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숙면을 취해도 부족할 판에 잠을 설쳤으니 속이 많이 상했다. 며칠간의 시험을 치르고 모든 짐을 싸서 보리는 대전으로 내려왔다. 집에도 이미 두 마리가 있었고, 나는 집 바깥에 족히 십여 마리 이상 되는 길고양이들에게도 먹이를 주고 있었다.

순종 어비니시언 만복이는 순둥이다. 만복이는 상냥하고 다정하다. 날씬하고 혈기 왕성한 청년인데 지인의 딸이 원룸에 방치하게 돼서 내게 왔다. 1년 후 동티벳 접경지역을 3주간 다녀온 사이 쉘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보리가 장애로 버림받은 어비니시언 순송 가시나 순복이를 집에 떡하니 데려다 놓았다. 순복이는 탈장 장애로 항문이 야물지 못해 하루에 예닐곱 번 온 집안에 설사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묘품(猫品)이 천상귀족인 만복이는 신사적 호기심에 삼순 할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길냥이 생활 6년으로 다져진 헝그리 파이터 기질로 찍어 누르고 할켜서 늘상 만복이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고는 한다. 이 와중에도 만복이는 작고 마르고 앙칼진 신경질쟁이 순복이를 어르느라 고달프게 묘생을 이어갔다.

1년 후 보리는 취직을해 부산으로 떠났고 나는 삼순이 만복이 순복이 이들 셋과 함께 주택으로 이사왔다. 일주일 후 아침 베란다에 나가니 삼순이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거품이나 토사물 없이 괴로운 경직도 없이 이완된 상태 그대로였다. 보리가 올 때까지 3일 동안 놔두었다.

작별이 끝나고 정원을 1미터 깊이로 파고 삼순이를 맨몸으로 묻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위에는 다년생 허브 체리세이지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각양각생(各樣各生) 각묘도생(各猫圖生)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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