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세상] '명월'이는 어디에?
[김경희의 사람사는 세상] '명월'이는 어디에?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07.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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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는 없지만 명월이 닮은 예쁜 사장
젊은이들로 생기 가득 명월관, 다시 숨을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한국관세신문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한국관세신문

 

명월관 축음기의 간드러지는 파열음이 들려야 할 불빛아래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자욱하다. 삼삼오오 모여 휴대폰 갤러리에 ‘명월관’을 담느라 손길이 바쁘다.

앳된 얼굴의 젊은 사장이 무릎이 드러난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분주하게 홀을 누빈다. 나비 같은 뒤태가, 고왔던 명월이가 환생 한 양 예쁘다.

중앙벽면을 다 차지한 자개장에 시선이 머문다. 십장생에 학이라도 날아와 앉을 자개장의 고혹적인 자태에 청춘들이 매료됐다.

연도를 알 수 없는, 할머니 댁 안방에 거들먹거리며 자리를 지켰던 자개장이 옆으로 누웠다. 소용가치가 끝난 자개장을 사장의 이모가 중고 샵에서 모셔왔다.

근사한 디스플레이로 진화되어 복고의 품격이 높아졌다. 한 귀퉁이 떼어 다른 방에 벽면을 또 디스플레이 했다. 거친 시멘트의 단층집 명월관은 중식당으로 당당했었다.

청주 성안 길에 젊은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커지면서 퇴각일로에 들어설 즈음 임자의 눈에 뜨여 다시 태어났다.

왕서방과 명월이는 찾을 수 없지만 명월이를 닮은 예쁜 사장, 생기 가득한 젊은이들로 명월이 없는 명월관은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그 자리의 역사를 자개문양으로 복권(復權)시키며 묘지화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그 앞에서 재잘대는 청년의 웃음으로 자개장은 장롱이 아닌 그 집의 ‘레트로’ 라는 위상으로 자리 잡았다.

잰 걸음으로 예쁘게 움직이는 사장도, 성안 길에 들러 명월관을 찾는 젊은이들도 다들 추억속의 명월이다. 그렇게 예쁘고 발랄하다.

코로나 19로 힘을 잃은 성안 길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명월이, 발사믹 소스에 절여져 적당히 힘을 뺀 대패삼겹살의 감칠맛, 곳곳에 놓여 진 거친 질감의 세련된 소품 그 오랜 손자국이 그대로 묻어 향수로 남았다. 

청주 성안 길 명월관

명월관 테이블마다 휴대폰 갤러리에 전시된 손 때 묻은 오래된 소품들이, 청년들 틈에 끼여 전혀 밀리지 않는다. 과거와 오늘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메뉴에도 그 둘이 공존한다.

젊은이의 혀끝을 사로잡고 기성세대의 입맛도 저버리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명월관을 환생시켰기에 청춘도 기성세대도 다들 반긴다. 젊은 사장의 엄마는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탁 레시피를 만들고 이모는 자개장, 조도 낮은 등, 탈색된 의자들로 복고의 향취를 청춘들에게 선물했다.

오래된 그 집이 성안 길의 기록이며 역사다. 골목에도 역사가 있다. 포크레인으로 밀어 소리 없이 묻힐 그곳을 청춘의 성역으로 만들었다.

길 건너 한옥 집 팔방미인, 다른 듯 같은 집, 한옥을 개량하고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눈길만 사로잡은 것이 아니다. 입맛도 붙들었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다르지만 같다. 주인이 같은 집, 그래서 와본 집 같다. 그 집의 돌담도 콘크리트 숲에 갇힌 청춘들에게 또 숨통 한번 트여주었다.

시대극이라도 한편 찍어야 할 것 같은 명월관과 팔방미인, 추억을 잃은 기성세대, 활력을 잃은 젊은 세대들에게 반짝이는 재미 하나 던져주는 명월관, 청춘들의 발길을 잡는 건 숨어 있는 명월이였다. 명월이는 과연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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