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내 덕 네 탓?
[특별기고] 내 덕 네 탓?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11.0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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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난관들을
네 탓으로 할지 아니면 내 덕으로 성찰,
'위기를 기회로 맞을지' 고민해 봐야 
정여림 작가(추억의뜰)

‘맛의 섬’이면서  ‘방시순석’ 이야기가 있는 이수도를 아시나요?

경남 거제시에는 바닷물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섬 이수도가 있다. 이 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두루미의 형상을 하고 있어 ‘학섬’이라고도 불려졌다. 이 섬의 이웃으로는 바다를 경계로 선착장이 있는 시방마을이 있다.

이 두 마을의 언덕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특이한 비석이 있는데, 그 연유는 뭘까. 이수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섬 일주다. 숲의 싱그러움 속에서 바다를 조망하며 걷고, 섬에 산다는 꽃사슴도 찾아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런데 섬 언덕 모퉁이에서 희귀한 비석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방시순석이다. 견고하게 새워진 1단 비석 위에 조금은 조악하게 만들어 덧세운 어색한 비석이 하나 더 얹혀져 있다.

조선 말엽 거제시 이수도 주민들이 맞은편 시방마을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의미로 세웠다는 방패비석,  '방시순석(防矢盾石)'

조금은 해괴한 모습이라 발길이 멈추게 되는데 역사적인 유래가 있다. 조선 말엽, 이수도 주민들은 갑자기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살기가 힘들어졌다. 한 도사가 마을을 찾아와 ‘이 섬을 마주하고 있는 이웃 시방(矢方)마을이 활을 쏘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화살이 학섬을 겨누고 있다.

그래서 학섬인 이 마을이 맥을 못 춰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그 방책으 로 시방마을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방패 비석을 세워라’고 일러주었다. 이수도 사람들은 그 방책이 반가웠다.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다는 뜻의 ‘방시순석’을 시방마을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웠다. 그러자 풍어를 이뤘다. 그런데 이웃 시방마을이 갑자기 몰락해 갔다. 시방마을 주민들은 이수도가 세운 비석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리고는 이수도 방시순석을 뚫을 수 있는 쇠 화살을 쏜다는 의미의 비석을 대응하여 시방마을 언덕에 세운다. 이에, 이수도 주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시방마을에서 쏘는 ‘쇠 화살을 막는다’는 뜻의 비석 을 급조해 기존의 방시순석 위에 덧세워 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두 마을은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 비방하며 싸움이 잦았고 상대의 비석을 깨부수려 시도해 서로 입도를 막기도 하는 등 다툼이 이어졌다 한다. 그럼 두 마을 갈등의 단초였던 화살의 실체는 있었나? 당연히 없었다. 지형의 특색을 살려 아주 순수하게 섬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훗날 서로를 탓하며 문제를 돌리는 시발점으로 작용한 웃지 못할 유물이며 에피소드다. 바다에 의지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섬 주민들. 이들이 상대 마을을 탓하는 도사의 말을 믿은 것은 거대한 자연에 종속돼 주린 배를 움켜잡은 절박함에서 나온 선택이라 보여진다.

현재 이수도는 1박 3식이란 관광 상품으로 널리 알려져 전국에서 모여드는 발길로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피해로 폐교된 이수도 초등학교를 단장해 시작한 민박업이 확산돼 섬 주민 여러 가구가 민박업으로 성공를 거두고 있다.

민박 손님에게 ‘상다리 부러질 듯 한’ 푸짐한 어촌밥상이 제공돼 화재다. 지역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갓 잡은 생선으로 차린 신선한 바다 식단을 맘껏 맛본 방문자들은 입소문을 내다보니 섬은 연중 문전성시를 이룬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수도 주민들의 자발적 지혜가 빛을 발하는 사례다. 지금의 활황을 두 마을에서는 서로 칭찬한다. 이수도 주민들은 ‘시방마을 선착장에서 많은 관광객을 태워 날라준 덕’이라 하고 시방마을은 ‘이수도가 푸짐한 밥상으로 손님들을 끌어준 덕’이라며 그 덕을 돌리고 있다.

근거 없는 화살 이야기로 남 탓하던 사람들과 비석 이야기는 전설 속에 묻히고 있다. 방시순석 겹비석 앞에서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봉착하는 수많은 난관을 네 탓으로 돌려야 할지, 내 덕으로 성찰해 위기를 기회로 마중해야  할 지를. 

 

[정여림은 2017년 종합문예지 [문장21]을 통해 시 등단, 거제신문 취재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추억의뜰' 자서전 작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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