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학림산방, "만추(晩秋)의 끝자락을 묶다"
[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학림산방, "만추(晩秋)의 끝자락을 묶다"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12.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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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같은 산 밑 집 두 채, '학림산방'
"학림은 제 고향이자 오랜 그리움이에요"

 

출판사 '추억의 뜰' 김경희 작가
출판사 '추억의 뜰' 김경희 작가

붓에도 향기가 있다. 서예가 학림 강현순 선생님의 문인화에 선생님의 결 고운 마음이 내려앉았다.

갓 덖은 햇차처럼 구수한 훈기와 향기를 담았다. 시를 빛나게 하는 그림, 그림을 따듯하게 만드는 시 한 수, 선생님과 닮았다.

나이 듦을 반가워하지 않는 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이고 갈까 두려운 마음이다. 학림산방의 강현순 선생님,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누구나의 욕심을 선생님은 욕심이 아닌 일상으로 보여주신다.

월전리 다리를 지나 저 멀리 학림산방의 메타쉐콰이어 나무들이 주황빛 물결로 햇살에 에워싸여 있었다. 30년 전에 심은 나무는 주인과 같이 나이 들어 고고한 품위는 빛바래지 않았다.

가을의 끝자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숲이 쓸쓸하지 않은 건 아마도 그 집의 안주인 향기가 더 깊숙한 가을로 묶어 두었을 것이다. 집이 사람을 닮는다. 사람이 집을 닮는다.

학림이라는 필명이 너무 고우세요. 선생님과 너무 닮은 이름인데 鶴林과 선생님만의 각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제 고향이 보은이에요. 고향이름이 학림이었죠. 어릴 때 우리 마을에 학이 많았어요.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은 학을 보면 그 고고한 기품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학림산방, 숲을 품은 집

학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품었었지요. 그 소망대로 축복을 받아 교육자였던 아버지슬하에서 자라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어요. 그 은혜로 자연과 더불어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더불어 음악 차 글씨 그림 시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고향이름을 닮은 삶을 살고 싶었는데 노년의 내 모습이 그러하기를 바라기만 하죠. 학림은 제 오랜 그리움이에요.

선생님은 바람대로 살고 계셨다. 고고한 학처럼 온유하고 기품 있는 노년의 삶이 학림산방 곳곳에 배어있다. 학림산방, 만추의 끝자락도 저리 고운데 절정 일 때는 눈부셨겠지.

병풍 같은 산 밑에 정갈한 집 두 채. 강 현순 선생님과 평생의 동반자인 옥천 예총회장님을 지낸 안후영 선생님. 학림산방보다 더 근사한 두 분이 학림산방을 지키고 계셨다.

강 선생님의 별채에는 선생님의 손길이 스친, 애정이 담긴 작품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있었다. 햇살 부서지는 창가에 앉아 실크스카프 한 장만으로도 맵시를 선보이는 선생님은 웃음마저 고우시다.

강현순 선생의 시화 작품

그림과 순간의 마음을 담은 시들은 한 수 한 수 작품이 되었다. 모서리마다 선생님의 손길과 애정이 담긴 문인화가 놓여 각진 공간마저도 부드럽게 감싸준다. 둥글둥글 끝이 무뎌져 고운 선을 이룬다.

겨울의 초입에 선 그 숲은 따듯했다. 학림산방은 두 분의 황혼처럼 그윽했다. 숲을 온통 품은 집, 학림산방은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마저도 그림 같았다. 두 분의 아름다운 노년을 고스란히 닮은 집, 학림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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