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중하의 물류이야기) 블록체인 기술이 포워딩산업을 재편할 수 있다?
(황중하의 물류이야기) 블록체인 기술이 포워딩산업을 재편할 수 있다?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4.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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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라 투자하지 않는 물류기업 경영방식이다.
황중하 범한판토스 과장
황중하/판토스 과장

물류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더 존재해 왔다. 각 NODE(교점)마다의 트랙킹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기술은 택배시스템이나 해외 역직구에도 이미 존재한다.

10여년전 동종업계인 팬택C&I에 친구가 트래킹 시스템( Tracking System)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 해당 시스템은 수출물량에 대한 트래킹만 가능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항공물량의 선적시점에 대해서만 Aircis(국토교통부 항공화물정보시스템)를 통해 트래킹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수출은 국내 공장 또는 물류센터에서부터, 수입은 해외 현지에서 한국 항만까지의 정보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가 당시 친구의 고민이었다. 많은 돈을 투자해 만든 트래킹 시스템은 각 NODE마다 정보를 수기로 입력하는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보니 별 효용없는 마케팅 홍보물로 전락 하고 말았다. 당시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당시 화주들은 블록체인기술에 기반한 상세한 수출입정보, 즉 수출입 트랙킹 정보는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택배를 받을 때 하루 이틀 내에 배송되겠지 하는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로 선사-관세청-터미널-포워더간 정보가 화주에게 직접 제공됨으로써 포워더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는 그래서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물량을 쥐고 있는 화주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선사와 다이렉트로 거래할 수도 있다.

 

선사를 통해 직접 정보를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선사가 무시할 수 없는 큰 물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정도 물량을 갖고 있는 국내 화주는 많지 않다. 물량을 가지고 있는 화주라면 모두 그룹내에 2자 물류회사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 속한다.

 

물류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현기술을 약간 보완하는 것이지 산업판도 자체를 바꿀정도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중소 포워더의 입지는 더욱 더 좁아질 것이고 어려움은 더욱 가속화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다소 옆길로 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은 아니니 화제를 좀 바꿔보자.

 

'자산형 물류기업 D사 vs 비자산형 물류기업 H사'는 필자가 2011년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연구주제였다.

 

당시 D사는 육해공 및 터미널을 보유하고서 수송사업에을 집중하고 있던 국내 모 그룹 소속이었고, 매출규모는 지금의 1/3 수준 밖에 안됐다. 이에 비해 H사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내실 경영으로 신흥 물류 강자로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다.

 

양사는 모든 면에서 다른 횡보를 보였다. D사가 물적자산에 투자했다면, H사는 비교적 투자가 적게 들어가는 인재영입에 포커스를 맞췄다. 특히 H사는 당시 물류학과로 지명도 있는 모대학 교수들과 함께 MBA과정을 사내에 개설해 우수한 인재를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3자물류 제안서를 만들어 프로젝트를 척척 따내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양사의 경영전략을 반추해 볼 때 D사도 H사도 대부분 사람이 물갈이 되었지만, D사는 글로벌 물류기업이 돼 있고, 이에 반해 H사는 물류사업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왜소해진 상태다.

 

인프라 물류장비 등 물적 자산은 남아 있지만, 인적 자산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위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는 경영방식을 '비자산형물류기업'이라고 그럴 듯 하게 포장하는 것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나, 결국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물류사업도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장치산업이다. 우리나라 포워딩산업이 경쟁력이 없는 이유는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 투자한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잘나가는 핵심 인재를 데려다 필요한 만큼 써먹고 버리는 식으로 사업하기 때문이다.

 

제안서에는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처럼 과대 포장해 담고, 계약체결을 위해서는 고객을 제왕처럼 모시다가도 계약체결된 후 서비스 진행하다 사고가 터지면 찾아가 우는 시늉만 하는 포워더가 대부분이다. 인프라와 시스템에 투자하지 않는 경영방식으로는 사고가 터졌을 때 달리 제시할 솔루션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래 전에는 포워딩사업이 지금과 같이 저수익 구조가 아니었다. 진입장벽이 낮아 경쟁은 날로 심해지는데, 기존 사업자는 운송주선업만을 고집하다보니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대형 포워더는 주선사업만 하지 않는다.

 

잉여금을 사내 유보해 해외법인을 구축하고 시스템도 개발하고 복합운송루트도 만든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브랜드가치를 만든다. 사고가 터지면 찾아가서 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인프라를 통해 개선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블록체인기술이 포워딩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프라와 시스템 개발에 투자하지 않는 포워딩 경영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만 데려다 놓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영업사원의 화주와 노하우가 사내에 내재화 될 때까지만 대우하는 관행화된 포워딩사업 방식이 우리나라 포워딩 산업을 점점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 글 내용은 한국관세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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