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가족, 伴侶犬(반려견)과 더불어
이제는 가족, 伴侶犬(반려견)과 더불어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09.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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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루' 아프면서 유기견에 관심 생겨
병원비, 귀여운 외모 사라지는 시점
애완견서 유기견으로 위치가 바뀐다

 

이정숙 시인(추억의 뜰)
이정숙 시인(추억의 뜰)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의 뒤태가 대견스러웠다. 아이울음 소리를 들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잰걸음으로 뒤를 따라갔다가 헛웃음만 나왔다.

유모차 안에는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애완동물 천만의 시대, 우리 집도 ‘얄루’를 곁에 두고 그 길에 동행하고 있다.

아침 8시. 모두 나가고 우리 둘만 남았다. 소파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느릿느릿 다가와 큰 눈망울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얄루 이리 올라 와”. 녀석은 두 손을 소파에 걸친 채 발을 들고 뒤뚱거리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올라오질 못한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묘기 부리듯이 껑충 뛰어올라 애교를 부리더니 이제 낑낑거리며 숨차하는 아이를 얼른 두 손으로 안아 올린다. 포근히 안기는 녀석. 얄루도 엄마 품에 길들여졌다. 서로가 편안한 시간이다.

“약 먹고 맛있는 밥 먹자.” 벌써 알아들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부엌으로 가는 내 뒤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따라온다.

물약을 주사기에 넣어 입속에 넣어주는데 이제는 기다린 듯 혀를 날름대며 잘 받아먹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가슴에 쏘옥 안겨온다. 그렇게 나와 녀석의 하루가 시작된다.

얄루가 우리 집에 온건 14년 전이다. 내가 원한 초대가 아니어서 얄루와 바로 친해지지 못했지만 너무 예쁜 모습에 얄루에게 이내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얄루라는 이름은 즉흥적으로 지어졌다.

예쁜 상자에 담겨 처음 집에 왔을 때 얄루는 손바닥만한 것이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쏙 뺏어갔다. 얄미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고 딸들이 얄루 얄루 불러주었다.

그렇게 얄루는 우리 집 귀염둥이가 되었다. 강아지 나이로 할머니지만 사실 아이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우 건강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 딸아이와 TV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얄루가 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정신없이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 CT촬영에 여러 종합검사를 마치고 나온 병명은 급성 폐수종이었다. 의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주며 노견에서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그래도 때 맞춰 빨리 와서 다행히 위험한 순간은 넘겼다고 위로를 했다.

아이는 안전한 치료를 위해 3일간 입원을 하여 정상수치를 받고 퇴원했는데 이제부터 평생 약을 먹어야 안전할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우리 딸들 아플 때 보다 더 애가 탔다.

다행스럽게 약도 잘 먹고 밥투정이 없어서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은 얄루에게 맞춰졌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정성이 갓난쟁이를 키우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얄루가 아프면서 자연스레 유기견에 대한 안타까움에도 관심이 생겼다. 통계수치만으로도 1년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견이 발생한다. 물론 의도치 않은 실종으로 유기견이 되어 견주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악세사리처럼 키우다 감당 못할 병원비와 일상이 번거로워지면 방치하기도 한다.

병원비도 사회 시스템안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방안들이 실행되어야 할 때다. 귀여운 외모가 사라지는 시점에 애완견에서 유기견이 되기도 한다. 견주들의 부주의와 의도로 유기견이 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유기견을 입양하는 견주들에게 까다로운 조건을 부여하는 것도 다시 버려지는 유기견을 방지하는 시스템일 것이다. 이제 애완견에서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보살펴야 할 때다. 앙증맞을 때도, 노견이 되어 지쳤을 때도 우리는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어느 한 순간 이라도 사람이상의 위로와 힘이 되었던 녀석들에게 우리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한다. 녀석들이 유기견과 반려견 사이에서 저울질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데려올 때의 그 마음 그대로 伴侶犬(반려견)으로 동행하기를 바래본다.

 

※ 외부 기고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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