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마음의 빗장을 푸는 사람
[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마음의 빗장을 푸는 사람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10.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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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평범한 수식어 하나 넣어보자
'훌륭한 사람, 차덕환'...삶의 자세 달라져"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한국관세신문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한국관세신문

차 선생님께 명함을 건네받으며 이름 앞의 수식어에 눈길이 멈췄다. '훌륭한 사람, 차덕환’. 파안대소하며 명함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렸지만 선한 눈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 마스크 넘어 구수한 웃음소리까지 곁들여졌다. 흰 셔츠에 빨간 바지도 눈길을 끌었다.

60대 후반의 문화해설사 차 선생님, 정지용 생가의 전시관은 코로나로 굳게 닫혔다가 최근 다시 빗장을 열었다. 오가는 발길이 늘었고 37.5도를 넘기지 않는 보통의 체온을 가진 사람들은 다시 전시관을 둘러볼 기회를 얻는다.

일행과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차 선생님은 “여기 들러주세요.” 안내데스크에서 우리를 부르셨다. 정지용 시인의 시 구절을 담은 책갈피를 선물로 주셨다. 마음에도 가을이 찾아온 지 오래다.

이어지는 손길, 건네주신 명함에 ‘훌륭한 사람’이라고 표기되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선생님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짐작해보았다. 프로필에 담긴 선생님의 행보도 이색적이었다.

화학공학과 출신의 선생님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수많은 봉사 이력을 갖고 계셨다. 특히나 풍선 아트 봉사. 족히 180센티는 될 장신의 선생님과 앙증맞은 풍선아트의 반비례는 빨간 바지로 그 의문의 공식을 바로 풀어냈다.

60대 후반의 남자에게 도전과도 같은 빨간 바지가 선생님의 은퇴 후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봉사로 얻는 삶의 희열을 이미 맛 보신분이다. 은퇴 후 요일마다 다른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분이다.

스스로에게 ‘훌륭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쑥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남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에 이 특별한 수식어를 표기하는 건 더더욱 그렇다.

차선생님은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 차덕환입니다'라고 소개한다. 결국 자신의 말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책임감의 발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남들에게 훌륭한 사람 차덕환이라고 계속 말을 하고 다니는데, 그대로 안 살면 오히려 허물이 되지요. 결국 이 이름이 제 인생에 책임을 지게 만들어요."

은퇴한 직장인과 예술가가 모인 '인생나눔교실'에서 첩첩산중 시골학교의 아이들, 보호관찰소의 청소년들을 만나 자신의 인생담을 들려준다.

오전 5시 30분, 충북 옥천에 사는 차선생님이 현관문을 나선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명예퇴직한 그의 현관 앞 문패에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은 정지용 생가에서 문화해설사로 다음 날은 옥천의 다른 문화 체험관에서 해설사로 기억된다.

다음날은 어린이 들을 찾아 풍선아트로 동심을 선물한다. ‘훌륭한 사람, 차덕환’ 명함을 건네면서 말이다. 그는 마음의 빗장 생각의 빗장을 푸는 사람이다.

이름 앞에 수식어를 넣어보자.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행복한 사람, 괜찮은 사람, 재밌는 사람 등등 평범한 수식어로 나열되지만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빗장을 푸는 사람들이 된다. 이름 앞에 수식어가 나를 책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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