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헤지펀드 행동주의 귀환
[김화진 칼럼] 헤지펀드 행동주의 귀환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12.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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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상법개정으로 국내서도 헤지펀드 행동주의 우려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이사진 때문에 실적 나빠질 때
행동주의가 그 틈새 파고들 경우 심각한 상황" 발생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코로나 여파로 2020년 한 해 동안 비교적 잠잠했던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느낌이다. 이번 주에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슨모빌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그것도 두 헤지펀드가 거의 동시에 공격을 게시해 기업과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먼저 12월 7일에 엔진원(Engine No.1)이라는 이름의 헤지펀드가 포문을 열었다. 이 펀드는 신생 펀드지만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창업자들이 참여한다.

엔진원은 엑슨모빌이 과거에 집착해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변신에 실패하고 있고,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장단기 전략 수립을 요구한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바로 사외이사 자리 4개를 요구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 펀드는 약 2500억 달러를 운용하는 미국 2대 연금, 캘리포나아교원연금(CalSTRS)의 지지를 받아 자신 있게 행동을 개시했다.

엔진원에 바로 이어서 이달 10일에는 DE쇼(DE Show)가 엑슨모빌 지분을 취득한 후 경영진에 비용 절감을 요구하고 나섰다.

회사가 코로나와 원유 가격 하락의 여파를 감당하기 위해 얼마 전에 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처분 계획과 향후 5년 간의 대대적인 비용 절감, 약 1만4천명의 감원 계획을 내놓은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83억 파운드를 운용하는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가세했다. 성공회 기금은 윤리적인 책임투자로 연 투자수익 5%를 지향하는 펀드다.

이 기금도 엑슨모빌이 환경을 의식하는 새로운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기를 요구한다. 종교 단체 기금이 행동주의에 가세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큰 압박이 될 것이다.

록펠러가 창업했던 스탠다드오일의 후신이고 한때 시가총액 5천억 달러로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엑슨모빌이 헤지펀드의 공격 목표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 엑슨모빌은 시총이 2천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시대 기업이 되어버렸다.

CalSTRS는 약 3억 달러, 엔진원은 약 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먼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동참 요청을 보냈다고 한다. 내년 5월 초로 잡혀있는 회사 주총에 대비해서 의결권자문사들과의 소통도 시작되었다.

엑슨모빌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명성을 자랑하지 못한다. S&P 500지수 기업들이 지난 10년 간 277%의 주주가치 상승을 기록하는 동안 엑슨모빌의 성적표는 마이너스 20%였다.

석유업계 내에서 마저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적을 냈다. 일련의 대형 투자에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지난 3년 간 CEO 보수는 35% 늘었다. CNBC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에서 엑슨모빌 매수의견을 내는 애널리스트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사회 개편은 통상 행동주의의 마지막 단계이다. 엔진원과 CalSTRS가 바로 그 카드를 꺼낸 것인데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이 회사에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 의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엑슨모빌의 이사회는 마치 인명사전을 보는 것 같은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에너지산업 전문가는 없다.

엔지원은 전직 재생에너지 기업 경영자와 풍력발전기업 경영자를 신규 이사로 추천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엑슨모빌 사례가 환경운동가들과 주주권익운동가들의 합작이 지속 가능한 모델인지도 보여줄 것이라고 풀이한다.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은 미국의 정권교체와 백신 출시 등을 계기로 이제 어느 정도 앞이 보이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면 투자은행들이 예상해 온 대로 2021년에는 M&A와 기업지배구조 관련 캠페인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엑슨모빌 사례는 그 전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달 9일 향후 최소 1인의 사외이사를 소수가 선출할 수 있게 하는 상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곧 해가 바뀌고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약탈적인 행동주의는 스튜어드십코드를 준수해야 하는 기관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큰 우려의 대상이 아니다.

가장 걱정해야 할 상황은 경영 실적 부진과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이사진 때문에 주주가치가 늘지 않는 경우다. 행동주의는 그 틈새를 파고 든다.

기관들이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기업들에게 불리하게 제도가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권의 이념적 기업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도 결국 기업들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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