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시 베트남을 겨냥했다
‘차이나 플러스 원’ 안전지대 흔들…한국 기업, 원산지·노동·IP 리스크 대비해야 ‘싸게 만드는 베트남’의 시대 끝나나…미국발 통상 압박에 한국 기업 긴장
[정도현기자|호치민.하노이]
베트남이 다시 미국 통상 감시망의 한가운데에 섰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중국을 대체할 대표적 생산기지,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의 안전지대로 평가받던 베트남 공급망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삼성·LG·효성·포스코 등 한국 제조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베트남 공급망 내 강제노동 대응이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놨다.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의 노력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며 즉각 반박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단순한 외교적 설전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미 무역흑자가 큰 베트남을 상대로 미국이 원산지, 노동권, 지식재산권(IP) 문제를 하나의 ‘통상 패키지’로 묶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이 정조준한 지점은 베트남 내 위조상품과 온라인 불법복제 문제다. 하노이의 대표적 도매·물류 거점인 닌히엡 시장과 일부 로컬 스트리밍 사이트가 지식재산권 침해 우려 지역으로 지목됐다. 베트남 정부도 지난 5월 한 달 동안 전국 단속 캠페인을 벌이며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의 시선은 여전히 엄격하다. 핵심은 일회성 단속 여부가 아니라 베트남 시장 전체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체계적 관리 시스템을 갖췄느냐에 있다.
호치민의 한 한국 제조업 법인장은 “과거에는 가격과 납기만 맞추면 됐지만, 이제는 협력사의 노동 환경, 부품 원산지 서류, 상표권 보호 체계까지 직접 검증해야 한다”며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트남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리스크는 베트남을 전초기지 삼아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도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 통관 과정에서 원산지 증빙 요건이 강화되거나 현지 협력사의 노동 환경이 문제로 지적될 경우, 물류 지연과 통관 리스크는 물론 브랜드 신뢰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여전히 젊은 인구 구조와 제조업 인프라, 빠른 내수 성장성을 갖춘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시장이 커진 만큼 리스크의 밀도도 높아졌다. 이제 미국 시장으로 향하는 제품은 단순히 ‘Made in Vietnam’이라는 라벨만으로는 무사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부품이 들어갔는지, 어떤 노동 환경에서 생산됐는지, 지식재산권은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까지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결론은 분명하다. 베트남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기업에는 리스크의 덫이 될 수 있다. 공급망 관리(SCM), 원산지 증빙, 협력사 실사, 노동 기준 점검, 상표권 등록과 온라인 위조상품 모니터링을 함께 준비하지 않는다면 ‘차이나 플러스 원’의 이점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지금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싸게 만드는 베트남’ 전략이 아니다. 글로벌 통상 기준 앞에서 안전하게 증명할 수 있는 베트남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