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사진을 벗어나 그림으로 태어났다
그 집의 창가에 이미 가을이 익을대로 익었다.
30호 정도 작은 시골마을 초입에 3층짜리 하얀 미술관이 들어섰다. 그 집의 통유리 창문은 때마다 계절을 스케치 중이다.
서울살이 하던 부부는 전원 생활을 시작하며 서울 집 거실의 명화들을 굳이 시골로 다 데려오지 않았다. 철마다 바뀌는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진즉 디자인 되었기 때문이다.
손 안에 쏙 잡히는 아기자기한 둥시 감나무 줄기가 마치 발레리나의 긴 팔처럼 나긋나긋하게 손을 뻗었다. 어느 날 툭 떨어져 질펀하게 속살을 보이기도 할테지만 얌전한 손에 들리어져 시골 집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으로 어른 아이 할것 없이 혼을 쏙 빼놓을지도 모른다.
감나무 그림을 배경삼아 2층 갤러리는 전시공간으로 잠시 자리를 바꿨다. 그 공간의 벽면을 차지하는 책들도 누워있거나 서서 꽂혀있거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책을 펼치든 그림을 보든 이미 안주인이 허락한 향유다. 그저 요술상자 같은 공간에서 감성만 촉촉히 적시면 된다. 그 예쁜 집을 들여다 보고 싶은 이들에게 문도 마음도 개방했다.
이웃의 사랑스런 여인이 여행마다 담았던 사진들을 모아 직접 아크릴로 다시 그렸다. 그 그림은 다시 2층 갤러리에서 전시중이다.
집 앞을 오가던 이웃들이 계단을 올라 그림을 둘러본다. 그들만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창밖의 가을, 실내의 그림들 이미 마음은 가지런해졌다. 더할나위 없다.
가을이 깊어 머잖아 둥시는 까치밥 하나 남기고 이파리마저 떨굴것이다. 그 발레리나의 긴팔위로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따뜻한 겨울 화폭이 또 펼쳐지겠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미술관 집'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