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가족의 달에 들어보는 어르신 자서전
[김경희의 사람사는 이야기] 가족의 달에 들어보는 어르신 자서전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20.05.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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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딸이라 동생들 챙기느라 내 몫은 없었고
결혼 후엔 남편과 아이들에게 다 내주었다
"그래도 인생 헛일 아니고 잘 살았다" 생각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박인순 어르신의 뜰, 텃밭 고랑이 반듯 반듯 나란히 줄도 잘 맞췄다. 어르신의 성정이 보였다. 감자를 심으셨단다. 분명 자식들 나눠 주실 건데 되레 한 소리 들으면서 주실 게 뻔하다. 사먹으면 되는데 사서 고생한다고.

그게 애미 마음이다. 돈 주고 사먹으면 편한 걸 누가 모를까. 내 손으로 밭 매고 물 줘서 키운 감자 한 박스씩 들려 보내는 게 한 해 가장 기쁜 일이다. 마루에 오르실 때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탓하며 아이구! 작은 신음소리를 내셨다. 마음이 아리다.

“어릴 때는 7남매로 자랐지만 다 죽고 이제 스이 남았어. 먼저 간 동생들 생각 날 때는 인생이 헛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영감 고생만 하다가 살만하니 환갑 때 멀리 떠나던 날도 인생이 헛일 같더라고”

장야리에 사는 여동생이 알타리를 먹음직스럽게 버무려 작은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갔다. 격식 없이 대문 열고 불쑥 언니!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 사는 집 같고 그날은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난다. 하물며 우리 새끼들이 다녀가는 날은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고추밭의 지렛대처럼 기댈 수 있는 힘이다.

하늘하늘 마른 대가 한 여름 뙤약볕에서 고추밭을 지켜주니 녀석의 힘이 크다. 나이 들어 기운 없는 나에게 자식들이 고추밭의 지렛대보다 더 든든하다. 암만!

“6.25때 열두 살이었지. 저녁에 소개령이 내려 마을 이장이 피난 가라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밤에 보따리 챙기고 동생 하나는 들쳐 업고 하나는 걸리고 냅다 뛰었어.

산에서 총을 쏘아 대는 데 그 소리가 머리 뒤 꼭지 바로 뒤에서 들리는 거 같았어. 얼마나 무서운지 혼은 다 나가고 다리가 후들거렸지. 겁에 질려서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잰 걸음 걷던 인순이가 어느새 팔순 넘긴 할미가 됐다.

박인순 할머니 댁 담장의 동요 벽화 '갈잎피리'. 1930년대 운동회 날에 연주되었던 동요다. 유년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한 박 할머니는 운동회 날이면 속 앓이를 하셨다.
 백운리 박인순 할머니(81세)/한국관세신문

내 세례명은 수산나, 외국인 신부님인 변 신부님께 영세를 받았다. 아마도 귀화해서 우리나라 성씨로 변 신부님이 되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초등학교 다니다가 난리 나서 학교를 그만 다녔으니 성당은 시골 여자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유일한 통로였다.

사람들이 오가고 유익한 말씀을 듣는 자리가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나마 야학을 다니면서 글자를 깨우치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순응하면서 살았던 거다.

맏딸이라 집안 일 거드는 데 우선이고 동생들 챙기느라 내 몫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생 없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살림하느라 동생을 걸려서 학교에 데리고 가곤 했다.

창피한 마음을 그 때 쯤 맛보았다. 결국 그런 등굣길이 오래 갈 리 만무하고 그렇게 동생한테 투정 부렸는데 막내가 먼저 죽고 나니 눈앞이 깜깜하고 죄책감에 한동안 마음 둘 데가 없었다. 그 시절 맏이들이 미련하게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봄 가을 운동회 때는 내 작은 가슴이 속앓이를 했어. 친구들 몰래 한숨도 많이 쉬었지. 나는 동생들 업고 살림하느라 학교를 끝까지 못 다녔잖아. 그래서 운동회 하러 가는 친구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몰라. 그게 뭐라고. 속을 끓였어”

박인순 할머니 댁 담당의 동요 벽화 '갈잎피리' 1930년대 운동회 날 연주되던 동요다. 박 할머니는 유년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해 운동회 날이면 속 앓이를 하곤 하셨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 박인순 할머니 댁 동요 벽화 '갈잎피리', 1930년대 운동회 날 연주되던 동요다. 박 할머니는 유년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해 운동회 날이면 늘 속앓이를 하곤 하셨다.

가끔 꿈에 어머니가 보이면 우리 고향 마장 문수암 입구에 흐드러졌던 벚꽃이 생각난다. 바람 불면 꽃잎이 하얀 나비 떼가 되어 십리는 날아갔다.

지금 아이들처럼 사진을 찍어대지 못했지만 눈에 마음에 새겨둔 정경이 아직도 선한거 보니 가슴으로 찍는 사진기가 최고인 건 틀림없다.

70년 동안 눈에 선하게 남는 고향 마을의 정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으로 그려만 봐도 락(樂)이 없는 우리를 위로한다.

여든이 넘은 우리들, 큰 애기 시절에는 형제들한테 내 몫 주고 가정을 꾸린 후에는 남편에게 또 아이들에게 다 내주었다.

우리 몫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 할매들. 이제 다 내주었으니 마음만은 죄다 주워 담아 가슴 한 편의 쓴 뿌리위에 수북이 쌓아야겠다.

인생이 헛일이 아니었다고 잘 살았다고 다독여 주는 한마디가 이렇게 달콤하다. 그래 인생이 헛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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