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의 교감, 그 다양한 출구--독서로 성장하는 성우
청소년과의 교감, 그 다양한 출구--독서로 성장하는 성우
  • 한국관세신문
  • 승인 2019.05.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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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 여행과 같아
- 청소년은 배우려는 의지도 어른을 따라 배워

 

오승주 작가(추억의 뜰 자서전 전문작가)
오승주 작가(추억의 뜰 자서전 전문작가)

 

성우는 첫 수업 때 수줍게 인사를 하고 별 말이 없었다.

3주째 수업을 진행할 동안은 지루해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정확히 어떤 시점에 성우가 흥미를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가 아닌가 짐작한다.

 

친구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때리고, 놀렸다.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도 결국 다른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은 우리 반 안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시비가 붙은 적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별명을 계속 부르고, 그 애가 먼저 폭력을 썼지만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그 애의 편만 들어주었다. 1학기 내내 싸움이 이어지다 겨우 끝이 났다. 내겐 슬픈 추억이다. - 성우의 <파리대왕> 독후감 중

나는 초등학교 때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때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담임선생님 이었다. 선생님은 내 말을 잘 들어주셨고, 내 편이 되어 주셨다. 나는 그 일이 아직도 감사하다. 선생님은 만화 《송곳》의 이수인이 찾던 ‘노조’와 같은 존재였다. - 성우의 <송곳> 독후감 중

 

12주의 수업 안에 두 개의 독후감을 제출하는 미션을 성실히 수행한 성우. 심지어 《송곳》은 6권짜리 장편이었다. 독후감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이 책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으며 나의 삶을 어떻게 성장시켜주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독후감이다. 특히 청소년 독후감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

나는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책이 일기 속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해 봐!”라고 말하기도 한다. 줄거리를 한가득 쓰거나 책의 뒷부분에 있는 해설을 대충 베껴 쓰고 마지막 한두 줄에 자신의 생각을 쓰는 ‘옛 독후감’ 형식은 30년이 지난 오늘날도 충실히 지켜지고 있었다.

독후감 교육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청소년들이 갑자기 잘 쓸 수 있을까? 특히 청소년들은 줄거리를 쓰는 것과 독후감을 쓰는 것을 동일시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독후’만 남고 ‘감’은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청소년과 독후감 공부를 할 때는 ‘독후감감감’이라고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성우의 글에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학교에서 부당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우의 부모님은 독후감을 읽고 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처음 알게 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성우는 안 좋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중학교 시절이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성우와 달리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영원한 침묵’ 같은 시간이 무척 두려웠다. 아마도 성우의 독후감이 수업의 방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대기업에 아첨하는 언론, 우리의 일상 속 전체주의 요소, 종교와 정치의 은밀한 거래 등을 이야기했던 날 성우의 소감은 유난히 격앙돼 있었다.

성우는 나의 중학교 시절과 매우 흡사했지만 어떤 중학생이건 나의 중학교 시절과 닮은꼴이 있었다. 닮은꼴은 대화를 깊이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학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증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나의 중학 시절을 탐험할 수 있었고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며 몰랐던 상처를 치유했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는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세대의 중학생들이 겪는다. 대를 이은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놀라웠던 것은 30년 전의 내 상처도 어루만져 진다는 점이었다.

성우 같은 원석을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런 청소년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석 같은 청소년이 찾아왔을 때 어른이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재능이 꽃피지 않는다. 그 점이 안타깝고 두렵다.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건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시간 여행 속에서 어렸을 때의 나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한데 어우러지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도 어른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오래된 금언처럼 가르치는 사람이야말로 배우려는 의지로 충만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배우려는 의지조차도 배우기 때문이다.

성우의 글은 여전히 거칠고 박력 있다. 하지만 중요한 배움이 자신을 통과했고 변화된 모습까지도 집약했다.

성우와 내가 이룬 교감이 청소년과 어른이 이뤄야 할 교감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추억의 뜰 오승주 작가가 진행하는 인문학 글쓰기 강좌(사진=추억의 뜰 제공)
추억의 뜰 오승주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받는 청소년들이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사진 오른쪽 양복입은 남성)과 함께 했던 청소년 민주시민교육특별수업 장면(사진=추억의 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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