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대 발달장애 대학생 5명, 생성형 AI로 그림동화 작가가 되다
협성대 발달장애 대학생 5명, 생성형 AI로 그림동화 작가가 되다
  • 정도현 기자
  • 승인 2026.07.2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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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그림과 자기 말로 완성한 8주간의 창작 여정…“AI는 조수, 학생은 원작자”
‘나의 분홍 코끼리’ 8주간의 창작수업…학생 작가 5명의 작품 온라인 전시
약 20명 참여·학생 작품 5편 온라인 공개…로그인 장벽 넘어 영상·노래·전자책까지 제작
발달장애 대학생이 직접 그린 캐릭터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그림동화 속 주인공으로 구현되고 있다. AI는 그림과 문장을 다듬는 조수 역할을 맡고, 작품의 방향과 최종 결과는 학생이 결정한다. | 기사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
발달장애 대학생이 직접 그린 캐릭터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그림동화 속 주인공으로 구현되고 있다. AI는 그림과 문장을 다듬는 조수 역할을 맡고, 작품의 방향과 최종 결과는 학생이 결정한다. | 기사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

[한국관세신문 = 정도현 기자]

학생은 좀처럼 모니터를 바라보지 못했다.

종이 위에 직접 그린 손그림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거쳐 동화 속 캐릭터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림을 그린 학생은 완성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전에 혼자 AI를 사용했다가 자신이 원했던 캐릭터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내 그림이 망가졌으면 어떡하죠.”

학생 곁에 있던 서포터즈는 화면을 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학생이 스스로 그림을 확인할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그렇게 30분가량이 흘렀다.

마침내 학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그림이 동화 속 캐릭터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한 학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8주간의 수업을 기획하고 강의를 맡은 이민우 뉴스페이퍼 대표는 “학생이 그림을 확인하고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이 수업에서 중요했던 것은 AI의 성능보다 학생이 자기 결과물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분홍 코끼리’가 있다

협성대학교는 지난 5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매주 금요일 교내 웨슬리관에서 「AI 활동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하나로 ‘나의 분홍 코끼리’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발달장애 대학생의 표현 방식과 창작 영역을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약 20명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자신의 작품과 작가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5명의 그림동화가 온라인 전시관에 발표됐다.

‘나의 분홍 코끼리’라는 이름에는 사람마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친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뜻이 담겼다. 다만 그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의 어려움은 사람마다 다르다.

프로그램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다듬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AI라는 새로운 도구의 도움을 받아 마음속 세계를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전시관은 이를 “학생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표현의 장벽을 낮추는 창작 수업”이라고 설명한다. 

이민우 강사가 전체 과정의 기획과 수업을 맡았고, 홍승주 보조강사와 서포터즈 5명이 학생들의 표현 활동과 디지털 기기 사용을 곁에서 지원했다.

그러나 주인공과 사건, 소원과 결말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작품의 방향을 정하는 권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에게 남겨뒀다.

잘 그리는 수업 아닌, ‘내 마음속 친구’를 꺼내는 시간

첫 번째 수업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색연필과 종이였다.

학생들은 그림 솜씨를 겨루는 대신 마음속 또는 꿈속에 있는 친구를 손으로 그렸다. 서정빈 학생의 연필로 그린 코끼리는 「코끼리 가족의 신나는 여행」으로 발전했고, 송지호 학생의 파란 크레파스 코끼리는 「무지개 비눗방울을 만든 엘리펀트」가 됐다.

홍승우 학생이 그린 ‘LOOK OUT’ 모자를 쓴 아이는 무엇이든 크게 볼 수 있는 「왕눈이의 신기한 눈」으로, 여휘 학생의 토끼 스케치는 「깡총이의 대모험」으로 다시 태어났다.

수업은 매주 하나씩 결과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주에는 손그림과 AI 변형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어 세계관 포스터와 표정 스티커를 제작하고, 캐릭터가 움직이는 짧은 영상과 일기 형식의 동화 페이지, 4컷 만화, 주제곡과 가사 카드를 차례로 완성했다. 일곱 번째 수업에서는 이를 전자책으로 엮었고, 마지막 시간에는 가족과 동료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읽었다. 

Bing Image Creator와 GPT 이미지 도구, Meta Animated Drawings, Duck.ai, Suno, Pika, Twine 등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활용됐다. 하지만 수업의 중심 자산은 학생의 손그림과 말이었다.

도구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의 손과 생각이 먼저 오도록 순서를 정한 것이다.

“동화 써 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이번 수업의 가장 두드러진 원칙은 AI에 이야기를 대신 쓰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사진은 GPT에 “동화를 써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AI에 ‘기자 역할’을 맡겨 학생에게 아홉 가지 질문을 던지도록 했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답답했던 일은 무엇인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한 뒤 무엇이 달라지는가.

질문은 AI가 했지만 답은 학생이 정했다.

AI가 학생의 대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임의로 완성하려 하면 “쓰지 말고 다음 질문만 하라”고 지시했다. 학생이 질문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때는 “쉬운 보기 두 개만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모인 대답은 ‘누가→원하는 것→그런데→그래서→마침내’라는 다섯 칸의 이야기 구조로 연결됐다. 주인공이 가장 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상황이 사건이 되고, 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은 그 사건을 해결하는 힘이 됐다.

AI는 문장을 정리하고 그림과 장면을 구현하는 조수였다. 이야기를 선택하고 완성하는 사람은 학생이었다. 

여러 AI 결과를 비교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다뤘다. 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결과를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거절하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AI가 제시한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고 판단하며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AI 활용 교육인 동시에 ‘사람이 마지막을 결정해야 한다’는 비판적 AI 리터러시 교육이었다.

침묵을 견디는 10초

도우미들에게도 특별한 원칙이 주어졌다.

학생이 말하다가 멈추더라도 문장을 대신 완성하지 않는 것, 최소 10초를 기다리는 것, 먼저 답을 알려주지 않고 “네 생각은 어때?”라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빠르게 수업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학생이 자신의 말을 끝까지 꺼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말이나 글로 대답하기 어려운 순간에는 감정 카드와 그림, 쉬운 선택지, 손으로 가리키기, 음성 입력을 활용했다. ‘답답해요’, ‘속상해요’, ‘무서워요’, ‘뿌듯해요’, ‘신나요’, ‘편안해요’와 같은 카드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가까운 감정을 선택하도록 했다.

학생이 선택한 감정은 동화 속 사건이 됐다. 현실에서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경험을 캐릭터의 어려움으로 바꾸고,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 해결하는 이야기로 다시 구성했다.

전시관은 이 과정을 “쓰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말했고, 내 욕망을 끝까지 따라갔으며, 한 편을 해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햄도리부터 왕눈이까지…다섯 학생의 세계

협성대학교 「AI 활동 역량강화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다섯 동화의 주인공. 왼쪽부터 박다원 작가의 ‘햄도리’, 서정빈 작가의 ‘아기 코끼리’, 송지호 작가의 ‘엘리펀트’, 홍승우 작가의 ‘왕눈이’, 여휘 작가의 ‘깡총이’. | 이미지=「나의 분홍 코끼리」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작
협성대학교 「AI 활동 역량강화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다섯 동화의 주인공. 왼쪽부터 박다원 작가의 ‘햄도리’, 서정빈 작가의 ‘아기 코끼리’, 송지호 작가의 ‘엘리펀트’, 홍승우 작가의 ‘왕눈이’, 여휘 작가의 ‘깡총이’. | 이미지=「나의 분홍 코끼리」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작

작품 공개에 동의한 학생 작가는 박다원·서정빈·송지호·홍승우·여휘 씨다.

박다원 작가의 「햄도리와 숲속 친구들」에는 숲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햄스터가 등장한다. 햄도리는 혼자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대신 숲속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아몬드와 호두를 찾는다. 마지막에는 친구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눈다.

박 작가는 작품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으로 “친구들과 아몬드와 호두를 나눠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를 골랐다. 빠르게 달리는 능력보다 함께 찾고 나누는 마음이 이야기의 결말을 완성했다.

서정빈 작가의 「코끼리 가족의 신나는 여행」은 가족과 여행을 떠난 아기 코끼리의 이야기다. 날씨가 너무 더워 가족이 지치자 코끼리는 자신의 코로 물을 높이 뿜어 모두를 시원하게 해준다. 서 작가는 “가족이 시원해져서 즐겁게 여행을 계속했어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송지호 작가의 「무지개 비눗방울을 만든 엘리펀트」에는 아픈 친구를 웃게 해주고 싶은 코끼리가 등장한다. 재미있는 말을 해도 친구가 웃지 않자, 엘리펀트는 코로 커다란 무지개 비눗방울을 만들고 그 안에 동물 모양을 띄운다. 친구가 마침내 웃자 엘리펀트도 함께 웃는다.

홍승우 작가의 「왕눈이의 신기한 눈」은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의 이야기다. 왕눈이는 알고 싶은 것이 생겨도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답답해한다. 그러다 무엇이든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활용해 수많은 책 사이에서 필요한 책을 찾아낸다.

홍 작가는 “왕눈이처럼 큰 눈으로 책 속의 답을 찾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이야기로 담았다”고 밝혔다.

여휘 작가의 「깡총이의 대모험」은 높이 뛰고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토끼의 이야기다. 깡총이는 높은 울타리를 넘지 못하지만 친구들과 힘을 합쳐 방법을 찾아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들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다섯 작품에는 경쟁에서 이기거나 강한 힘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가족을 시원하게 해주고, 아픈 친구를 웃게 하며, 책을 찾아 배우고, 힘을 합쳐 울타리를 넘는 주인공들이 있다.

AI가 만들어낸 획일적인 서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관계와 소망이 작품마다 고스란히 드러난다. 

AI보다 높았던 ‘로그인의 벽’

수업을 진행하며 예상 밖의 어려움도 확인됐다.

AI로 그림과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보다 각종 서비스에 로그인하고 본인 인증을 통과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더 큰 장벽이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든 뒤 휴대전화 인증을 하고, 문자로 전달된 번호를 입력한 다음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다시 선택해야 했다. 비장애인에게는 몇 분이면 끝나는 절차가 일부 발달장애 학생에게는 수업 참여 자체를 막는 높은 문턱이 됐다.

디지털 서비스가 보안을 강화할수록 인지·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이용자의 접근성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현실이 수업 현장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민우 강사는 “생각보다 힘들었던 것은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 로그인 과정이었다”며 “사소해 보이는 인증 절차 하나하나가 장애 학생들에게는 큰 벽이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AI 교육 확대와 함께 사용자의 인지 특성을 고려한 로그인 방식, 쉬운 인증 화면, 교육기관용 접근 계정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작품 공개보다 중요한 ‘공개 여부를 선택하는 권리’

수업에는 약 20명이 참여했지만 온라인 전시관에는 공개에 동의한 5명의 학생 작품만 실렸다.

실명과 주소, 장애 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는 AI에 입력하지 않았다. 이름과 얼굴 사진도 학생과 보호자가 동의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전시관에 공개된 작품의 원안과 캐릭터에 관한 권리 역시 각 학생 작가에게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작품을 만드는 선택권뿐 아니라 작품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한 것이다.

학생 작품 5편에 이민우 강사가 전체 세계관을 열고 연결하기 위해 만든 동화 3편을 더해 온라인 전시관에는 총 8권의 작품이 공개돼 있다. 원화와 완성 그림, 캐릭터 카드, 움직이는 영상, 주제곡을 함께 볼 수 있으며 페이지별 읽어주기와 큰 글씨 보기, 키보드·터치 조작도 지원한다.

수업에 사용한 교재 6종도 교육·연구 목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같은 교육을 준비하는 교사와 기관이 프로그램의 결과만이 아니라 실제 설계 과정까지 참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을 가족 앞에서 읽다

지난 7월 10일 마지막 수업은 대규모 외부 행사가 아니었다.

학생들이 8주 동안 만든 작품을 가족과 동료, 수업 운영진 앞에서 직접 읽어보는 작은 낭독의 자리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표지를 펼치고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읽었다.

그날의 의미는 유창하게 발표했는지, AI를 능숙하게 다뤘는지에 있지 않았다.

마음속 친구를 손으로 그리고, 여러 결과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고르고, 답답했던 일을 이야기로 바꾸고,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완성했다는 데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학생’이 아니라 ‘작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민우 강사는 “문학을 배우면서 글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배웠다. 타인을 구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에는 자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며 “발달장애 학생들이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AI가 보조해 각자의 세계를 밖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교육의 의미”라고 말했다.

AI 시대의 교육은 더 빠르고 그럴듯한 답을 얻는 방법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대답을 10초간 기다리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볼 용기가 생길 때까지 30분을 함께 앉아주는 일도 필요하다.

AI는 그림을 바꾸고 문장을 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거절할지, 누구에게 작품을 보여줄지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협성대학교 웨슬리관에서 태어난 여덟 권의 동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는 조수였다. 학생은 작가였다. 그리고 한 사람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가장 따뜻한 기술은 ‘기다림’이었다.

 

* 해당작품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pink.news-paper.co.kr/

 

기사제보 : dhjung@kc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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